저자: 이 기 주
출판사: 말 글 터
출간연도: 2016 (ISBN: 979-11-955221-2-5)
이 책은 크기도 작지만 쪽수도 306이고 중간중간에 여백이 많아 읽는 데 부담이 적게 느껴지는 수상집이다. 그러나 작가는(이기주 씨는 작가로 스스로를 불렀다) 한숨에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거닐기를 부탁하고 있다. 실지로 어떤 글은 제목 하나에 한쪽이 채 되지 않으나 씹어 볼수록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책은 세 개의 장(章)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글(文), 지지 않는 꽃;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로 제목을 붙이고 30개쯤의 조그만 제목의 글을 포함시켰다.
언어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어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며 따뜻한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 준다는 일관된 마음을 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일상에서 행해지는 언어들의 소중함을 알아감으로써 각자의 언어 온도 를 되짚어 봤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가 우리의 행동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늘 함께하기 때문에 언어의 온도는 언어 자체는 물론 마음가짐의 온도와도 맥을 같이한다는 주장을 여기저기서 느끼게 해 준다.
책을 읽으며 제일 반가운 것은 일상 현장에서 듣고 느끼는 걸 솔직하게 써 갔는데 현학적이지 않고 가르쳐 들지도 않아 편하면서도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걸으면서 또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사소한 것에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작가는 ‘활자 중독’에서 아버지와 함께 청계천 근처 골목을 걷다가 퀴퀴한 종이 냄새에 이끌려 작은 헌책방에 들어갔다가 활자 중독이 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간혹 책을 많이 읽었다는 냄새를 풍기긴 한다. 어원(語源)을 쓸 때가 그렇다. 그러나 으쓱거린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책은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얼굴이 예뻐.” 하려다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는 간단하다면 간단한 예를 시작으로 풀어 나간다. 몇 개의 주제를 조금 더 살펴본다.
<그냥 한 번 걸어봤다>는 제목의 예다. ‘잘 지내? 그냥 한 번 (전화) 걸어봤다’를 생각해 본 글이다.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뜻하다. 안 본 지 오래되었는데 이유 없이 보고 싶다거나 좋아한다 혹은 사랑한다 같은 뜻이 오롯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그냥…’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청아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게 작가의 의견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필자)는 하와이에서 연수할 때 만났던 정신과 선배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그 선배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정신과 수련을 받았는데 어느 날 길을 걷다 보니 수련 동기가 개원한 곳을 지나게 되었단다. 그냥 반가운 김에 들어가서 서양인 동기를 만났는데 간단히 인사 나눈 후 “왜 왔느냐?”고 정색을 해서 매우 당황했었다는 경험이었다. 하기야 영어에 ‘그냥’을 그대로 전해줄 표현을 찾기가 어렵기도 했을 게다.
<틈 그리고 튼튼함>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주는 메시지도 재미있다. 우리는 틈이 있으면 튼튼하지 못하다고 생가하며 또 튼튼하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기 싫어 틈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는 어느 절에서 석탑을 사이에 두고 주지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스님이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해.” “네? 틈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결국 지나치게 완벽을 찾다보면 찾는 사람이나 주위에서 힘들 수 있는 게 뻔하지 않겠는가.
<자세히 보면 다른게 보여>라는 글도 삶에 조그만 지혜를 더해준다. 작가가 ‘앞 차 꽁무니만 쫓아가다 앞에 사고가 있어 길이 막히자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하고 주위를 살핀다. 마침 한강가였다. 강물을 보고 있으니 물가 위를 떠다니는 게 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바람이 흐르고 햇살도 내려앉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다른 게 보이는 거다. 가끔은 우리도 주위를 되살펴야 한다. 다른 걸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을 느낀다.
<여행의 목적>도 흥미 있게 읽었다. 나로서도 여행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우리 주위엔 요즈음 여행 열기가 대단하지 않은가. 작가는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면서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행을 제대로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는 이어서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관계가 그러한 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 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곱씹어 볼 만한 글이라고 본다.
나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탓인지 <나이를 결정하는 요소>도 눈길이 갔다. ‘나이를 결정하는 건 세월일까, 생각일까?’ ‘늙는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작가는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은 후 결론을 내린다. ‘나이의 한계는 한계로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과 세월만으로 나이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동의 여부는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어쩌면 동의라기보다 희망 사항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은 후 우선 두 번을 써 먹었다. 요긴하게 한 번은 주례 설 때였다. 주례라는 게 신경이 꽤 쓰이는 일이지만 특히 주례사를 어떤 걸로 할까를 준비할 때가 그렇다. 매번 같은 걸로 할 수도 없고…. 얼마 전 주례사에서는 『언어의 온도』를 읽었다고 소개하면서 일상에서 말하는 태도에 대해 초점을 주었다. 부부의 인연이 잘 익어가려면 거창한 데서 해답을 찾을 게 아니라 늘 이루어지는 일상에서 어떤 말을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힘을 주었다. 특히 ‘그렇군’ ‘미안해’ ‘고마워’의 표현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행여 ‘미안하다’라는 말을 먼저 하면 무언가 지고 들어가는 듯한 마음이 든다면 부부로서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음을 경계했다. 새롭게 출발하는 한 쌍은 물론 가 족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냥 인사말일 수도 있지만.
또 한번은 내가 소속된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충남북부지회에서 얼마 전 정신치료 지도감독에 대한 발표에서 본 저 서를 인용했었다. <헤아림 위에 피는 위로라는 꽃>에 나오는 글을 그대로 전했다.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위로를 경계한다.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여기서 나는 정신치료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몇 군데 더 작가의 글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정신치료라는 과정은 듣는 작업이 우선이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고 해석도 해 주어야 하므로 치료자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면해서 하는 정신치료에서 치료자로서 말을 할 때 표정이나 제스처도 중요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가 정신치료 과정에 영향을 줄 게 뻔하다.
또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시행한다고 해도 지지적인 기술을 곁들여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치료자가 하는 말의 온도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때 언어가 무한정 따뜻할 수 만은 없겠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 언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코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언어가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언어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앞서 빈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치료자가 빈틈 없이 수행하려는 태도도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글 앞에서 쩔쩔맬 때면 나는>에서 작가는 ‘책 쓰기는 문장을 정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로 시작해서 글 쓰는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우린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일도 그렇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
저자의 글쓰기 과정에서 생각하는 걸 정신치료에 그대로 대입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느낀 글이다(작가는 꽤 많은 영화를 책에 인용하고 있다). ‘굿 윌 헌팅’이란 영화에서 숀이라는 심리학 교수가 유년 시절의 상처로 방황하는 수학 천재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쓴다. 숀은 자책과 분노로 똘똘 뭉친 윌을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이미 많은 분들이 썼을 지지적인 표현이겠는데 나도 최근 두 증례에서 사용했었다.
젊어서 망나니같이 지내던 40대 초의 사업가가 반성과 노력 끝에 모처럼 사업에 탄력을 받는데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경을 헤맨다. 죄책감이 엄습해 온다. 자기가 애를 먹여서 그렇게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죄책감과 그래도 반성했다는 스스로의 위로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환자에게 적당한 시기에 아버지 병은 환자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지지를 해 주어 그의 죄책감 감소에 도움이 되었었다.
또 한 예는 만성적인 불쾌감으로 고생하는 여성인데 애같이 기르던 개가 죽은 후 심한 우울감을 호소한 경우였다. 좀 더 제대로 치료를 해 주지 못한 자책과 적절하게 치료해 주지 않은 수의사들에 대한 분노가 컸는데 성의껏 들어준 후 “당신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이 감정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이외에도 일상에서 느끼며 따뜻하게 쓰는 말들을 그대로 정신치료 장면에 옮기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이기주라는 작가의 배경이 궁금했는데 책 앞뒤에 아무 소개가 없었다. 나이도 없고 묘하게도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익명성이 최대한 강조되었다고나 할지.
참고로 이 책은 2017년 9월 1일 우리 학회 북클럽에서 토론한 책이다. 당시 필자가 본 서평 앞부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포함한 내용들이 다루어졌는데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 인지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