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ng-Jun Yi has been one of the most influential contemporary Korean writers. His serial novel, The negative and positive pictures of painful memory, is autobiographical. In the form of a patient’s free association during psychoanalysis, he seems to write of his own painful past memories in this novel. I have analyzed this novel psychoanalytically by assuming that its main character is the writer himself. The character shows some neurotic symptoms. He finds it difficult to remember his father’s face, and remembers being afraid of a dam construction site when he was a child. He usually feels uncomfortable in crowds, and once experienced dissociation after listening to criticism in a meeting. His attitude is rigid; he seems to be restrained by invisible restrictions. He has depressed affect, has no ambition, and is passive. I have tried to interpret these neurotic symptoms as having originated from his Oedipus complex, which was unresolved because his father died when he was seven years old. He seems to have castration anxiety, low self-esteem, and a harsh and immature superego. Confronting his painful feelings, he tries to solve his intrapsychic conflicts by writing his story. However, I have suggested that dealing with his unresolved Oedipus complex would have better relieved his neurotic symptoms.
이청준(1939~2008)은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을 발표한 이래 약 40여 년 동안 소설과 산문집을 포함해 40여 권의 작품을 썼다.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로서 현대인의 소외나 이상 심리로부터, 전쟁, 사랑, 구원, 죽음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예술, 문학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주제로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다양한 주제의 소설이지만, 그의 소설들은 대체로 ‘개인적 진실의 탐구’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러한 개인적 진실의 문제는 대개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해소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토대로 한 경우가 많은데, 즉 작가가 유년시절에 겪은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허기와 가난, 고향으로부터의 추방의식과 귀향 욕망의 양가감정, 부끄러움과 죄의식, 6·25 전쟁시의 고통 등의 경험이 소설 속에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Lee 2002).
이청준의 소설에 대해서 정신분석적인 비평을 한 평론가들이 많은데, Kim(1971)은 “이청준적 인물은 유년 시절에 가족 관계의 비정상성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입어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지 못한 한 인간의 분신들이다”라고 주장하며 이청준의 소설에 대한 정신분석적 연구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Kim(1982)은 이청준 소설의 인물들이 세계와 불화 속에 빠져 있는데, 이러한 불화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 상처들 중 하나는 ‘전짓불’에 대한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하였다. Lee(1991)는 당대 한국 소설 가운데서 광기나 정신분열 현상 및 의식의 심층적인 증후군에 대해서 가장 각별한 문학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형이 이청준 소설의 공간이라고 보았다. Wu(1996)는 이청준 소설의 전개 과정이 ‘끝없는 고된 진실에의 순례’길이며 ‘숙명적인 이상주의자’의 길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고난과 실패의 길이기도 한데, 그것이 어린 시절 ‘게 자루 체험’과 ‘광 속 체험’에서 보이는 현실에 의한 자아의 패배의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청준의 소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은 것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과거에 고통스런 상처를 겪고 현재를 불행하게 살아가는 신경증 환자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고백체로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은 현실적인 느낌을 많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학비평가들의 정신분석적 비평은 문학적인 쪽에 치우쳐 있어서 작품 속의 인물을 이해하는 데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즉, 작품의 주인공은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가를 연구하면서 그 심리 상황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가 무가치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작품 속에 구현된 가상의 인물을 분석하는 작업은 다소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논문에서는 그와 달리 소설 속에 드러난 작가의 심리를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규명해 보고자 한다.
소설을 비롯한 예술 작품이 정신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그것이 인간의 의식, 무의식적인 정신작용의 산물이고, 소설 작품 속에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데 있다. Freud(1900)는 작가의 예술 활동은 꿈과도 같이 그의 무의식적 소망이 의식 세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왜곡, 위장되어 나오는 ‘소망충족’으로 파악하였고, 그러한 전제에 의거하여 예술 작품에 대한 정신 분석적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예술가의 심리를 분석하려고 하였다. Freud의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도 예술 작품을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 이해해 보려는 노력들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Freud는 문학보다는 정신분석에 더 관심이 있었으므로 작품 속에 드러난 작가 개인의 심층 심리를 이해하는 쪽으로 연구하였다.
이청준의 소설을 작가 자신의 정신분석 쪽에 초점을 두고 시행한 연구는 Choi와 Cho(1996)가 이청준의 데뷔작인 ‘퇴원’과 출세작인 ‘병신과 머저리’에 대해서 시행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작가인 이청준의 구강기 및 오이디푸스기의 갈등과 형제 간의 경쟁관계, 적개심, 죄책감 등의 감정을 분석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청준의 연작 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Yi 1990)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 소설은 작가가 1980년대 중후반에 쓴 5편의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연작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작가의 실질적인 과거 기억이 많이 포함된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적으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 연작 소설에서 마치 분석에서 자유연상을 하듯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현재의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 정신분석적으로 다루기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 모든 일들은 진실일 수도 있고,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일 수도 있다. 그것이 허구라도 분석의 대상이 되는 데에는 상관이 없다. Freud는 초창기에는 분석 중 나오는 환자의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라 여기고, 억압된 무의식의 복원에 집착했다. 그러나 1897년 친구인 Fliess에게 보낸 편지에서 환자들과의 작업에서 나온 과거 기억과 자신의 자기 분석에서 나온 기억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들의 소아기에 만들어진 판타지이거나 백일몽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Freud 1897). 그것이 허구라고 하더라도 역시 환자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이 독자와 평단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의 소설이 현대 한국인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과 4·19, 5·16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현대 한국의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며 그 체험을 소설로 표현해 왔다. 이러한 소설과 작가에 대해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연작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 속에 묘사된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가정하에, 어떤 무의식적 욕구와 갈등들이 그의 내면에 있는지 정신분석적으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이청준은 1939년 8월 9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에서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가족의 죽음을 잇따라 겪는데, 6세 때 세 살 남동생이 홍역으로, 그리고 반년 후 맏형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1946년에 아버지가 타계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사후 집안이 어려워져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1948년 다소 늦은 나이에 대덕동국민학교(현 회진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 2, 3학년 무렵부터는 죽은 큰형이 남긴 소설 읽기에 열중했다고 하는데,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던 큰형은 책 속에 남긴 메모를 통해 이청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청준은 공부를 아주 잘했다. ‘천재’ 이청준은 선생님의 지시로 동급생은 물론 상급생도 종종 가르치곤 했다고 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으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광주에 가서 시험을 치고, 1954년 광주서중에 입학할 수 있었다. 호남에서도 끝자락에 있는 시골 진목리에서 광주서중에 입학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입주 가정교사를 하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성적이 계속 좋아서, 1957년에는 광주일고에 입학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결심을 하였고, 1960년에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하였으며, 대학 시절에는 4·19와 5·16을 겪으면서 Thomas Mann을 애독하였다고 한다. 가난한 유학생이었으므로, 군대도 빨리 다녀왔는데, 1962년에 육군에 입대해 1964년에 제대했다. 이청준은 복학 후 거처가 마땅치 않아 밤이면 문리대 건물에 몰래 숨어 들어가 자곤 했는데, 이때 수위가 휘두른 전짓불은 6·25 전쟁 때 겪은 전짓불과 함께 그의 정신에 뚜렷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1965년 <사상계> 신인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이 작품은 친구의 죽음이 동기가 되어 쓰여진 것이라 한다. 이때의 인연으로 그는 대학 졸업 후 <사상계>사에 입사하는데, 이 해에는 다 죽고 하나 남은 형마저 사망하며 장례비가 없어 경제적 곤경에 처한다. 이때 쓴 작품이 그의 출세작인 ‘병신과 머저리’(Yi 1971)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8년에는 결혼을 하면서 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첫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출간했고, 1972년에는 두번째 창작집 ‘소문의 벽’을 출간했다. 1981년에는 뒤늦게 외동딸을 얻기도 하였다.
그는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과 ‘서편제’가 들어 있는 ‘남도사람’ 연작 및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한 일련의 장편들, 그리고 1998년 21세기문학상 수상작인 ‘날개의 집’에 이르기까지, 우리 해방 50년사에 있어서 가장 진실한 영혼의 궤적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그의 작품세계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영혼의 본질과 삶의 실체에까지 육박해 들어가면서 매우 소중한 암시와 웅숭깊은 상징의 밑자리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거의 공백기가 없을 정도로 매년 수많은 작품을 남긴 이청준은 2006년 여름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가 2008년 7월 31일에 68세로 세상을 떠나, 고향 진목리에 안장되었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머릿 그림
해방 이듬해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치 가위에 눌린 듯하다. 아버지는 마을 어른들이 모여 큰 공사를 하는 곳에 나를 오지 못하게 했는데, 그곳에 오면 나 같은 아이를 산 채로 함께 묻을 수 있다고 겁을 주셨다. 6·25 전쟁 때 산 사람을 묻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알게 되면서 그 공사장에 대해서는 더욱 공포감을 갖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산장 여관에서 매달려서 죽어가는 개의 모습을 목격한 것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때 늘 동원되던 합동 행사에서도 가위눌림 현상을 경험하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답답하고 두려운 가위눌림의 그림 중 하나는 가난의 그림인 것 같다. 또한, 반쪽 모습만 보이고 전체가 보이지 않아 공포 속에 애를 먹는 가위눌림의 가장 무서운 그림은 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전짓불 앞의 방백
나는 사람들의 눈길이 많은 곳에서는 늘 마음이 편치 못하고 구석진 곳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모자란 까닭일 것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나의 상처가 건드려진 다음 날에 나는 자아망각증을 경험하였는데, 그것은 마음속의 혹심한 갈등과 억제할 수 없는 자기 도피 욕망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자기 망실과 갈등, 주눅기에 맞서 이겨 나갈 힘은 나의 자아와 그 진실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내가 6·25 전쟁 때 경험한 공포의 전짓불 앞에서는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여 목숨을 걸고 진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자아의 선택이 현실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고 모호하고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요즘의 소설들은 개성적 삶보다는 사회적 공의나 그에 대한 신념 쪽에 지나치게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는 개인적 진실과 사회적 공의라는 두 개의 전짓불에 지금도 쫓기면서 끊임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듯한데,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와 통합의 대상일 것이다.
금지곡 시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어느 부인의 품위 있고 자연스런 행동에 대한 기억, 12살 때 가까운 친척 형에게 겪은 배신의 기억, 그 즈음에 목격한 집안 어른의 인상적인 자존감의 기억, 초등학교 시절 목격한 집단적 광기의 우스꽝스럽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 등은 내게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복합적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일상적 생활의 금계사항들이 허다하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갈등을 야기시킴도 사실이다. 남녘의 화가 계산은 자신이 현재 꿈을 꾸고 있으며 꿈을 깨는 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멀리 날아갈 것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나 역시 한 시대의 금계망에 스스로가 꽁꽁 묶여 지내 왔고, 그로 인한 자기 갈등의 압력을 지녀 온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꾸는 꿈을 통해 알 수 있고, 여러 가지 꿈들은 나의 억압된 갈등과 무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잃어버린 절
남녘 해변가의 고향 마을에는 천관산이라는 큰 산이 있고, 그곳에는 지금은 없어진 큰 절, 탑산사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해남 대흥사에서 큰 종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종은 원래 천관산 탑산사에 있던 것으로, 절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대흥사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종이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소리를 잃고 한낱 유물관의 관람물로 주저앉아 있는 처지라는 것이 나의 궁금증을 자극했는데, 나 역시 고향을 떠나 스스로 무력하고 무위하게 살아온 것으로 느끼는 탓이었다. 그래서 찾게 된 천관산의 새 암자에서 나는 그곳의 신도들과 스님에게서 남루한 허욕과 자폐성의 기미를 발견하고 낭패감과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종이 원래 있던 산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누추하고 자폐적인 고향 마을의 망연한 삶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키 작은 자유인
나는 광주의 중학교에 진학하여 친척의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선물용으로 가져간 게 자루 속의 게들이 가는 도중 깨진 채 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서, 그것이 나의 처지를 대신하는 듯하여 남루하고 창피한 느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게 자루는 일생 동안 나를 끝없는 갈등과 무기력한 망설임 속에 빠지게 하는 것 같다. 고향 마을의 젊은 목사님과,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그리고 6·25 전쟁 때 아버지의 마을 친지에 대해 느낀 의혹과 불신, 배신감 등은 내가 비루한 소인배처럼 어둡고 비좁은 음화의 세계 속을 헤매고 살아가도록 만든 사람들이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매사에 거침이 없고 기행을 일삼던 어른이었던 김 씨 영감님이나 실없는 장난꾼 상이 용사 청년 규순씨 등이 오히려 내게는 동경의 초상들이 될 것 같다. 그들은 비록 키가 작아서 제 발 밑 땅 밖을 벗어나 넓고 먼 삶의 터는 일궈낼 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내겐 더 알뜰하고 소중스런 자유인의 초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8·15 해방 이듬해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단 한 장도 당신 생전의 사진이라는 것을 남겨 놓은 것이 없으셨다.”(Yi 1990) 이러한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평론가 김현은 이 소설을 읽고 작가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팔아먹다 팔아먹다 바닥이 드러나니까 이제는 다시 제 돌아가신 아버지를 팔아먹기 시작했더구만”(Yi 1990)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작가가 소설집의 후기에 스스로 언급한 말로, 김현의 말을 작가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정신적 발달단계 중 오이디푸스기의 갈등을 이야기할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아버지는 작가의 나이가 7세가 되는 1946년(8·15 해방 이듬해)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시기는 발달단계 중 오이디푸스기의 다음 단계인 잠복기에 해당되고, 이 시기에 남자 아이는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내재화하면서 초자아를 성숙시키고, 오이디푸스기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조절 해 가야 한다(Colarusso 1992). 그런데, 작가의 경우 이 시기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건강한 초자아의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오이디푸스기의 갈등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7세에서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한다면 오이디푸스기의 갈등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련된 감정이 나올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기의 핵심적 공상 두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살부의(patricidal) 소망이다(Bergmann 2010). 아버지를 공격하고 쫓아내고, 때로는 죽이고 싶은 소망은 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따라서 아버지를 공격하고 싶은 소망은 매번 두려움을 동반하게 되고, 아버지의 복수를 걱정하게 된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성성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거세불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Freud 1924). 이 소설에서 오이디푸스기의 거세불안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에 대한 첫 기억을 보면, “아버지는 암소가 새끼를 낳는 것을 도우시다가 옷자락 여러 곳에 벌건 피투성이를 해 가지고 외양간을 나오신 일이 있었는데…. 얼굴 모습은 기억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Yi 1990)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피투성이를 해서 나오는 아버지에게 작가는 두려움과 거세의 공포를 느꼈을 수 있고, 그 공포감으로 인해 아버지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억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전에 형과 동생이 사망한 이야기가 나온다. 형과 동생의 사망을 이해할 수 없는 작가는 그들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이 자신과 같은 소망, 즉 어머니에 대한 성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오이디푸스기의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동네의 저수지를 막는 방축 공사장과 얽힌 아버지의 협박성 경고 역시 이런 거세불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를 하였다. “방둑을 쌓을 땐 흙구덩이 속에다 산 사람을 하나 던져 넣어서 덮어 묻는 법이란다. 방둑이 오래오래 무너지지 말라고 말이다. 우린 너같이 어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그러니 너는 울력판 근처엔 얼씬도 하질 말아야 헌다.”(Yi 1990) 이 말은 어린 작가에게 죽음의 공포, 거세불안을 일으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된다. 작가는 궁금증을 못 이겨 그 공사장에 몰래 가서 마을의 남자 어른들이 다 같이 작업하는 것을 엿보게 되는데, 그곳에서 “몸이 떨리고 숨이 차올라서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는”(Yi 1990) 경험을 한다. 그것은 거세의 공포를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기가 지난 시기에 울력판 공사장의 일, 즉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복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지만 공포감은 지속되었다고 한다. 본문 중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물론 어렸을 적의 잘못된 환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국민학교를 들어가고 철이 들면서부터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상스러운 것은 그런 사실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이후로도 여전히 그 울력터에 대한 이상스런 공포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Yi 1990)라고 기술되고 있다. 합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는 일에 대해 공포감을 갖는 것은 일종의 신경증적 증세라고 할 수 있고, Freud(1918)는 성인기 신경증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였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내향화하면서 억압되어야 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기에 작가의 공포감은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감은 6·25 전쟁 때 실제로 겪은 일에 의해 강화되기도 하였다. 6·25 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산 사람을 흙구덩이 속에다 파묻어 덮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그 울력판에서도 산 사람을 정말로 흙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었으리라는 끔찍스런 생각이 뒤늦게 되살아났고, 울력판의 환각이 공포 속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Yi 1990)라고 기술하고 있다. 산 채로 묻힐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경고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더욱 불안해지고, 그것은 거세 공포를 상기시키는 것이어서 작가를 더욱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성인이 된 뒤에도 작가를 공포스럽게 한 일로 기술된 월출산의 산장 여관 앞에서 목격한 ‘매달려서 죽어가는 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역시 마치 자신이 그렇게 당하는 듯한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이 역시 해결되지 않은 거세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울력판 사람들이나, 6·25 전쟁 때의 사람 사냥꾼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들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역시 그 모든 보복과 거세의 주체가 아버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그 얼굴 없는 울력판 사람들의 음화를 양화로 인화해 보면 거기엔 아마도 그 외가 동네의 대낮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아버지와 이웃집 권 씨 아저씨 같은 우리 동네 사람들의 얼굴 모습들까지도 거기 함께 끼여 나타났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그것을 인화시켜 볼 용기를 가져본 일이 없었다”(Yi 1990)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산 채로 사람을 묻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울력판 사람들과 사람 사냥꾼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이고 두려워서 억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떠올리지 않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고, 나에게 뭔가 잘못이 있어서 나를 잡아서 산 채로 묻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내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울력판 사람들과 사람 사냥꾼들은 모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영향하에 거세의 칼날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들이고, 그 공포가 지속적으로 남아 있어서 그 얼굴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연작 소설 2편에서 ‘전짓불’을 든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느끼게 되는데 이는 2편에서 계속하여 고찰하겠다.
연작 소설 2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내놓을 만한 성미나 버릇이 못 되지만, 나는 사람들의 눈길이 많은 곳에서는 괜히 늘 마음이 편칠 못하다. 식당이나 술집 같은 델 찾아들 때만 해도 사람이 너무 붐비는 곳을 피하고, 집을 정해 들어가 자리를 잡을 때도 영업장의 중앙이나 입구 쪽보다는 한갓진 구석 쪽을 골라 앉기 예사다.”(Yi 1990)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작가는 “소심한 고문관의 자기 부재 감수 현상”(Yi 1990)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모자란 까닭일 것”(Yi 1990)이라고 자기 진단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연작 소설 1편에서 나오는 울력판 공사장에 대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신경증적인 증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만한 외부적인 요인이 없이 일어나는 증세이고, 그렇다면 원인은 마음속에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작가는 “주위의 무심한 언동들이 알게 모르게 자주 상처를 건드렸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도 나는 그 무심스런 상대 앞에 혼자서 같은 상처를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탁으로 가기 전 나는 우연히 조간신문에서 간밤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언짢은 기사 한 가지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신문을 내던지고 그 길로 곧장 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데 그로부터 7, 8시간 가까이 나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Yi 1990)라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종의 해리 현상이라고 할 이 증세에 대해 본문 중에는 “마음속의 혹심한 갈등과 억제할 수 없는 자기 도피 욕망”(Yi 1990)으로 인한 것이라고 스스로 진단하고 있는데, 해리란 과거의 뼈아픈 갈등 혹은 상처가 현재의 스트레스에 의해 상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억압 혹은 방어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Brenner 1994). 즉, 현재의 사건이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뼈아픈 갈등과 상처를 건드렸고, 그것이 해리 현상을 초래한 것임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이어서, 작가는 ‘전짓불 앞의 공포’라는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두 가지 신경증적 증세들의 형성에 이 과거사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전짓불 앞의 공포’에 대해 본문 중에는 “앞에 선 사람의 정체를 감춘 채 전짓불은 일방적으로 ‘너는 누구 편이냐’고 운명을 판가름할 대답을 강요한다. 그 앞에선 물론 어떤 변신도 사라짐도 불가능하다. 대답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대답이 빗나가 편을 잘못 맞췄을 땐 그 당장에 제 목숨이 달아난다”(Yi 1990)고 기술되고 있다. 이 ‘전짓불 앞의 공포’는 6·25 전쟁 때 작가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문의 벽’에서 자세히 기술되고 있다. “어렸을 때 겪은 일이지만 난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6·25가 터지고 나서 우리 고향에는 한동안 우리 경찰대와 지방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마을을 찾아 드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경찰인지 공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또 마을을 찾아 들어 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은 우리 집까지 찾아 들어와서 어머니하고 내가 잠들어 있는 방문을 열어 젖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Yi 1972)
1편에서 고찰하였듯이 이러한 공포는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울력판 공사장에 대한 공포나 6·25 전쟁 때의 사람 사냥꾼에 대한 공포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즉,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작가의 내적인 두려움으로 인한 억압이듯이, 작가가 주눅들고 소심한 고문관 같이 되는 것이나 해리 현상을 초래하게 되는 갈등 역시 오이디푸스기의 갈등과 연관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전짓불 앞의 공포’는 작가의 다른 소설인 ‘퇴원’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작가의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인정되며, 그 의미에 대한 연구도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Kim(1978)은 이청준의 데뷔작 ‘퇴원’에 드러나는 광 속 체험에서 작가의 원초적 체험이 발견된다고 하면서, 즉 전짓불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세계와 부드러운 속옷으로 대변되는 어머니의 세계라는 대립적 세계인식을 주장하였다. Lee(1991)는 이청준 소설의 대표적인 증후군으로 전짓불 공포를 지적하고 전짓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잔인성, 그리고 생활적인 무서움의 상징이라고 하였으며, Wu(2005)는 전짓불이 대타자의 시선 권력의 상징으로 현실적 억압적 질서를 환기한다고 지적하였다.
Kim(1978)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전짓불 앞의 공포’가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연관된다는 증거는 작가의 데뷔작인 ‘퇴원’에서 찾을 수 있다. ‘퇴원’에서 주인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광에 들어가 어머니와 누이들의 속옷을 만지작거리고 냄새를 맡으며 낮잠을 즐기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를 아버지에게 들킨 후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광에 갇히는 벌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아버지가 광에 있는 주인공을 발견할 때 비춘 것이 전짓불이었다. ‘퇴원’의 주인공이 어머니와 누이들의 속옷을 만지작거리는 행위는 근친상간적 욕구의 비유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Choi와 Cho 1996). 실제로 어린 작가가 6·25 전쟁 때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자고 있는데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전짓불을 비추며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물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자신을 벌 주려고 산에서 내려온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고 거세의 공포로 인해 두려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1편에서 이야기한 대로, 산 채로 묻힐 수도 있다는 공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 되고, 과거 아버지가 겁주었던 ‘울력터 공사판의 공포’를 상기시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짓불 앞의 공포를 작가는 현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 테면 나의 소설을 감시하는 두 개의 전짓불인 셈이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는 개인적 진실 쪽에서요, 다른 하나는 사회적 공의 쪽에서다.”(Yi 1990) 작가는 성장한 후에도 자신의 입장이나 견해를 밝혀야 할 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하여 주저하고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자리를 정할 때도 구석진 곳을 찾게 되는 것이고, 술자리에서 의견을 밝힐 때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는 전짓불 앞에서 잘못하면 거세될 수 있는 “제 목숨을 건 자기 진실의 드러냄”이 되는 것이기에 심리적으로 더욱 공포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다. 작가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자신에게 온정적인 초자아의 발달에 성공했다면 이러한 갈등은 심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결국, 연작 소설 2편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전짓불 앞의 공포”는 오이디푸스기의 공포와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이 쓰여지던 1980년대 우리 사회에는 당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금지된 대중가요가 많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연작 소설 3편 ‘금지곡 시대’에서는 이렇게 금지하고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경우 자신의 행동을 금지했던 인생 초기의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다름 아닌 연작 소설 1편에서 “울력터 공사판에 오는 것을 금지했던 아버지”일 것이다. 이러한 금지는 상징적인 의미일 수 있는데, 남자아이가 오이디푸스기에 품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금지하는 인물이 바로 아버지인 것이다. 결국, 현재 오이디푸스기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작가는 권력의 금지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편의 초반에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친척 형과, 지서순경은 이러한 권력자의 모습인데, 이 둘은 가혹한 초자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물들은 지금껏 거세의 칼날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고 금지하는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로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작가를 주눅들게 하고 있어서 억압적이고 금지하는 현실에서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3편의 초반에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중년 부인과 친척 어른, 화가 계산은 자신들의 자연적 욕구를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인물들이다. 내적인 배설의 욕구와 수면의 욕구를 거리낌 없이 충족하는 여인에 대한 동경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세 명 중 하나인 화가 계산은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나는 지금 깊은 꿈을 꾸고 있소. 이 깊은 꿈이 퍼뜩 깨는 날 나는 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멀리 날아갈 것이오”(Yi 1990)라고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말이 “아내와 자신의 삶을 포함한 지상의 현실을 모두 버리고 떠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의 화창한 성취 위에 눈과 정신이 한껏 자유로워져서 그의 아내와 자신을 포함한 지상의 현실을 보다 더 힘있게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그러나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한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솟아오른 피맺힌 절규로 읽혀진 것이다”(Yi 1990)라고 해석하였다. 여기서의 자유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고, 건강하고 성숙한 초자아를 확립하여 자신의 신경증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안정된 자존감을 유지하여 마음껏 그 뜻을 펼치는 상태를 의미하고, 작가는 그러한 상태를 소망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나 또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시대의 금계망에 스스로가 꽁꽁 묶여 지내 온 격이 되리라. 그리고 그로 인한 자기 갈등의 압력을 지어 지녀 온 셈이리라”(Yi 1990)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거세 위협을 두려워하며 억압 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고백하고 있다.
3편의 후반기에는 일련의 꿈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들의 원인이 되는 무의식적 소망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용변이 급한데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도 꺼지지 않는 욕망이 나타나는 꿈이라든가, 사춘기 때의 춘몽에서 아쉬움 속에 못내 허무하게 깨어나는 안타까움의 꿈 등은 내용 그대로 자신의 자연스런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춘몽의 내용은 “전혀 엉뚱한 상대와 부끄러운 고개까지도 오를락말락”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오이디푸스기의 근친상간적인 성적 소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무서운 흉한에게 쫓겨 대는 도망질 꿈이나, 군영 생활의 꿈 등은 아버지의 거세 위협을 두려워하는 내적 공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위아랫 이빨이 옥수수 알처럼 빠져 쏟아진다든지, 신발짝을 잃고 마냥 조바심을 쳐댄다든지”(Yi 1990) 등의 꿈은 대표적인 거세 공포를 나타내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자신도 “요즘 와서 그 옛 악몽들이 빈번하게 다시 재연되는 현상도 이제는 그 사연이 자명해진 셈이다. 그것은 아직도 옛날의 소망이나 갈등의 문제들이 현실에서 정직하게 해소되질 못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Yi 1990)라고 3편의 끝 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소망이나 갈등의 주된 문제들은 억압적인 현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해소되지 못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것이다. 현실에서 금지곡을 양산하는 “압살적 권위주의 권력”은 가혹하고 미성숙한 초자아의 상징으로서 작가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거세의 칼날을 들이대는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심화시키는 환경이 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연작 소설 4편의 ‘잃어버린 절’은 작가의 고향에 있는 산에 있던 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절은 탑산사인데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고, 그 절에 있던 구리종을 작가가 다른 곳에서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종은 고려 때의 작품으로 “장원하고 양명한” 소리를 내던 훌륭한 종인데, 지금은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소리를 잃은 채 한낱 유물관의 관람물로나 주저앉아 있는 처지가”(Yi 1990)된 것이 작가에게 애틋함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작가 역시 “광주 지역으로 중학교를 나갔다가 집안이 파산하여 식구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바람에, 나는 근 20년간 실망과 열패감 속에 고향 마을을 거의 등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Yi 1990)는 것으로, 그 종의 처지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에서 산 속에 있는 잃어버린 절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작가가 예전에 잃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가족이 파산하여 흩어질 일은 없었을 것이고, 탑산사가 건재하고 있었다면 구리종이 다른 곳에서 떠돌고 있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리종을 품고 있던 잃어버린 절은 아버지이고, 떠돌고 있으면서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종은 작가 자신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그 종을 보고 “자기 뿌리를 모른 채 제 조상을 욕하며 세상을 부박하게 떠돌아다니던 탕아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본 모습을 깨달았을 때처럼 부끄럽고 뜨거운 회한기가 치솟았다”(Yi 1990)고 하였는데, 종의 훌륭한 모습이 자신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게 되므로 작가는 그 종과 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탑산사가 사라진 것이 절에 빈대 떼가 극성을 부려 불태워 없앴다는 다소 모욕스런 전설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임란 시의 병화’ 때문이었다는 사실 역시 작가에게는 절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것은 결국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는 말이 된다. 이 고을 사람들은 흉포한 왜병에 맞서 싸우며 나라의 위난을 앞장서 물리치려는 멸사구국의 정신을 지닌 백성들이었는데, 그 결과로 왜병의 집중적 공격을 받아 절이 불타고 고을이 피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초자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의 초자아는 자아와 갈등하며 서로 배척하고,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사실은 그것이 가치 있고 고귀한 정신이었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일이 된 것이다.
Freud(1914a)는 ‘자기애에 대하여’란 논문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상적인 기준과 비교하는 구조가 있음을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구조 이론의 초석을 놓았다. 성격의 판단적 측면으로 자리잡는 이 구조는 부모의 비판에 의해 자극되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교육, 훈련, 문화 기준에 의해 확장된다고 하였다. 그 구조는 초자아인데, 건강한 초자아의 형성은 아이가 오이디푸스기의 집착에서 벗어나 도덕성을 내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발달에 긍정적 자극을 준다고 한다(Freud 1923). 일단 마음 속에 초자아가 생겨나면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여 자존감의 주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면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포기되지 않아서 아버지로부터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거세 공포가 지속되고, 건강하고 안정된 자아 이상이 포함된 초자아의 형성을 완수할 수 없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자아와 초자아는 서로 극심한 갈등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고, 자신감이 결여되고 주눅든 채 지내게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작가가 절을 복원하고 다시 산의 정기를 세우고자 하는 것은 작가가 과거에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다시 찾아서, 건강한 초자아를 확립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여 활기차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산에는 인근 주민들과 한 스님이 만든 새로운 암자가 탑산사임을 주장하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절을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작업은 쉽지 않게 되었다. 현재의 신도들과 스님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현실적이고, 자폐적인 신앙을 추구하며 진정한 과거의 정신이 깃든 탑산사의 건설에는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에 존재하는 새로운 절은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혹하고, 미성숙한 초자아를 상징하고, 이러한 초자아가 마음 속의 갈등을 익숙한 방법으로 방어하며 타협 형성을 해왔기에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초자아의 확립이 쉽지 않음을 나타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탑산사에 있는 스님 역시 자신의 사적 이익에만 급급하여 과거의 역사적 진실을 덮으려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렇게 존경 받기 어렵고 의심스럽고 미성숙한 대상이 내적으로 존재하고 진실을 덮으려는 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갈등의 해결로 나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4편에서 결국 잃어버린 절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전의 미성숙하고 가혹한 초자아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건강한 초자아를 발달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편에서는 광주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신세지게 된 친척집에 선물용으로 잡아간 게 자루 속의 게가, 고향 마을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 안에 있는 동안 부스러지고 깨어져서, 도착했을 때는 고약스레 상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게 된 수치스런 기억이 제일 먼저 나오고 있다. 작가는 “(그 게 자루가) 나의 몰골이나 처지를 대신하고 있기라도 하듯이……이날 입때까지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간섭을 일삼고 있는 것이고……그로 하여 나의 삶의 몰골은 끝없는 갈등과 무기력한 망설임 속에 형편없는 왜소화와 음성화의 길만을 걷게 해온 것이다”(Yi 1990)라고 고백하고 있다. 작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었을 것이고, 어머니와 함께 갯벌에서 잡아간 게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근친상간적 욕구에 대한 처벌이나 거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오이디푸스기의 성적 소망과 그로 인한 보복을 두려워하는 상태에 머물러, 새로운 세계에서 의심과 공포 속에 무기력하게 망설이게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게 자루 사건 이후로 5편에서 작가가 기술하는 일련의 인물들에 대한 시각에서 작가의 무의식적 갈등을 알 수 있다. 먼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목사를 통해서는 “사람들 간에 미리 서로 약속된 일의 값과 질서들, 나아가 그 진실성과 권위를 의심하고 믿지 못해 하는 내 겁 많고 옹졸스런 인간관”(Yi 1990)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사회적 권위와 가치관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선생님은 작가의 형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어린 작가를 괴롭히고 급기야는 자퇴를 시키려고 하는 미성숙한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선생님과 형과의 갈등이다. 선생님은 밤마다 동네 처녀들을 불러내서 노래를 가르쳤고, 작가의 형을 비롯한 동네 청년들은 그런 총각 선생님을 좋게 보지 않았다. 여자를 사이에 놓고 형과 선생님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작가를 형과 한편으로 보고 있으니, 이는 작가의 내면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상황이 된다. 급기야 선생님은 작가를 자퇴시키려는 거세의 칼날을 들게 되는데, 결국 작가에게 “미덥고 존경스러워야 할 그 담임 선생님에 대한 나의 아픈 기억-성스러운 사도, 페스탈로치의 교육 정신, 군사부일체…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앞장을 서 머리를 내밀곤 하는 것이다”(Yi 1990)라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하며 역시 자신을 거세하려는 사회적 권위에 대한 반감과 의심을 갖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목사와 선생과 같이 권위적인 인물은 4편에서의 스님이나, 3편에서의 친척 형과 지서 순경 같이 작가에게 동일시하고 싶은 가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타계 이후에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온 사람이었는데, 6·25 전쟁 때 작가의 집 지하실에 숨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친척 어른을 잡으러 앞장 서서 오면서 배신감을 주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그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로, 지하실에 숨은 친척은 작가 자신으로 상징되고, 밤중에 전짓불을 비추며 거세의 칼날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당하는 작가 자신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이 작가의 마음속에 미숙하고 가혹한 초자아로 존재하여 작가를 위축시키고, 주눅들게 하는 것이다.
5편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두 인물인 김 영감과 규순 총각은 작가에게 “동경의 초상들”이 되어준 인물들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둘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율보다는 개인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 사람들로 기술되고 있다. 규순 총각은 전쟁에서 다리를 잃지만 동네에 돌아와 밝은 모습을 잃지 않은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작가는 그를 통해서 비록 거세가 되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위안을 얻으며 거세 공포를 이겨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그들처럼 자신의 소망을 마음껏 실현하고 싶은 뜻은 본문 중에 다음 구절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초상은 내게는 누구보다 참되고 분명한 자유인, 비록 키가 작아서 제 발 밑 땅 밖에 넓고 먼 삶의 터는 일궈 낼 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내겐 더 알뜰하고 소중스런 자유인의 초상으로 지녀져 온 것이었다.”(Yi 1990)
그들 나름의 자유인인 김 영감과 규순 총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들은 어딘가 주눅들어 있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5편의 제일 끝에 묘사하고 있는 동네 노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젊은 시절 6·25 전쟁 당시에 자신을 책임자로 임명하려는 마을 윗자리 어른의 말이 두려워서 산으로 피신하여 살아 남은 인물인데, 그의 인생 체험을 보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나의 삶 판이 아무리 비좁고 무력하여 이룸이 적다 하더라도 나는 어차피 그럴 수가 없었겠고, 앞으로 그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Yi 1990) 이 노인은 2편에서 작가가 묘사하는 외종형과도 의미가 통하는 인물인데, 외종형은 작가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외종형은 공부를 한다면 으레 군수, 경찰서장이나 판검사를 꿈꾸던 그 시절인데도, 시골 국민학교에선 제법 머리가 괜찮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그 형을 찾아가기라도 할라치면, 공부해서 벼슬 얻을 생각 마라, 위에 서서 사람을 다스리려고도 말고, 어느 한 쪽에 끼어 살려고도 하지 마라, 아직은 그 뜻을 잘 알 수 없는 말들을 혼잣소리처럼 일러오곤 할 뿐이었다.”(Yi 1990)
그 두 인물은 가혹한 초자아를 피해 조용히 눈에 띄지 말고 살자는 교훈을 주는 사람들인데, 그들처럼 살아야겠다는 결론이라면 다소 패배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Loewald (1980)는 새로운 세대가 과거의 세대를 이어받아 새로운 주역으로 일어나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그것이 진정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죄책감이 많은 개인이라면 그 과정을 순탄하게 진행해 나가지 못하고 주눅들고 갈등스러운 상태로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키 작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는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마치 ‘키 작은 자유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은 ‘자기애적 피학적 성향’의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도 있다. 즉 Cooper(2009)에 의하면 아이에게 자기애적 전능감은 중요한 요소인데, 지속적으로 자기애적 상처를 입다 보면 이러한 전능감에 상처를 입고 그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원해서 고통을 받는 것이라는 피학적인 성향을 발달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전능감을 유지하고 그 상황을 방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청준의 연작 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는 자전 소설로서, 마치 정신분석에서 자유연상을 하듯이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기술하고 있는 소설이다. Freud (1914b)는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이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며 그것이 심리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았고, 그 억압된 기억을 회상하고 기억에 얽힌 감정을 해결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연작 소설에는 작가의 과거 기억이 많이 나오는데, 때로는 인화되지 못한 필름 속의 음화처럼 억눌려 있는 기억도 있고, 인화된 사진의 양화처럼 생생한 기억도 있다. 작가는 그런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 행위를 통해 그런 음화와 양화 속에 얽혀 있고 억압되어 있는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을 다시 느끼며 마음속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의 자가 정신치료과정이 바로 그의 문학작품이라는 말이다.
연작 소설의 1편에서 5편에 걸쳐 기술되고 있는 작가의 신경증적 증세는 다음과 같다. 1편에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가위 눌림과 울력터 공사장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고, 2편에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마음이 편치 못하고 주눅드는 현상과 술자리에서 충격을 받은 후 경험한 해리 현상을, 3편에서는 보이지 않는 금계망에 꽁꽁 묶여 지내온 경직된 태도를, 4편에서는 그 동안의 삶이 무력하고 무위하게 느껴지는 우울한 정서를, 5편에서는 진취적인 야망이 부족하고 소극적이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증세들의 많은 부분을 작가가 7세경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서 해소되지 못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측면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거세 불안을 느끼고 있고, 건강하고 성숙한 초자아가 확립되지 못해서 자존감이 낮고 늘 주눅들게 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 행위를 통해 억압되어 있는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을 다시 느끼며 마음속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할 것인데(Bergler 1954), 과연 작가의 시도는 성공하였는지 의문이다.
그가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자유인은 5편의 제목처럼 키가 작은 자유인이고, 뭔가 여전히 주눅들어 있고 움츠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4편에서 ‘잃어버린 절’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존경할만한 모습을 동일시하는 작업은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고, 결국 이전의 미성숙하고 가혹한 초자아가 자아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키 작은 자유인’이 되는 것을 기꺼이 감내하고 받아 들여야 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내적 갈등이 자신을 ‘키 작은 자유인’으로 만들어, 가혹한 초자아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살도록 이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진정으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내적 갈등을 자각하고, 해소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3편에서 화가 계산이 꿈꾸고 작가 자신도 희구하는 진정한 자유인의 상태인 “예술의 화창한 성취 위에 눈과 정신이 한껏 자유로워진”(Yi 1990) 상태, 즉 신경증이 치유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는 용인정신의학연구소의 연구기금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