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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p of Hermeneutics
Psychoanal 2022;33:36-43
Published online April 30, 2022;  https://doi.org/10.18529/psychoanal.2022.33.2.36
© 2022 Korean Association of Psychoanalysis.

Chang-Hun Lee

Leechanghun Psychiatric Clinic, Ulsan, Korea
Chang-Hun Lee, MD
Leechanghun Psychiatric Clinic, 241 Daegongwon-ro, Nam-gu, Ulsan 44667, Korea
Tel: +82-52-265-2051, Fax: +82-52-265-2071, E-mail: drchanghunlee@gmail.com
Received February 28, 2022; Revised March 27, 2022; Accepted March 27, 2022.
cc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Abstract
Since Freud founded psychoanalysis, it has been evolved ceaselessly to maintain the position as a valid theory and an effective treatment method. Here is a philosophical discipline that has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psychoanalysis; this is contemporary hermeneutics. Hermeneutics is a major step in the philosophical field, about reaching the truth of humans and our world. Hermeneuticists argue that natural science is inadequate as a methodology to understand the truth, and they developed the hermeneutic concept for new methodology, i.e., to participate in the dialogue and understand the interaction between the dyad. Under the hermeneutic influence, the focus of psychoanalytic practice has been moved into understanding the meaning created in the relationship from the objective observation and interpretation of repressed unconscious contents. Inspired by hermeneutics, psychoanalysis turned over a modern methodology and theory in terms of investigation for the human psyche and expanded its realm to the whole human society and culture. However, some analysts and philosophers point out the danger that followed with merging psychoanalytic practice with hermeneutic concepts excessively. They are concerned that the status of psychoanalysis as a science would be damaged by the attitude that devalues the metapsychological theory and objective observation as a methodology of psychoanalysis. The author agrees that the concept of natural science and hermeneutic discipline should integrate dialectically to be more valid and more effective theory and methodology. However, at the same time, the author argues that in the contemporary trend of psychoanalysis, analysts weigh the excessive value on the creation of new narratives and new meaning, and they have the possibility of danger that they would lose the essential tool to address the resistance of patient and therapist’s unconscious. This paper’s focus is that we must not forget the nature and the goal of psychoanalysis that the repressed state of the patient should be explored using objective observation through overcoming patient’s and therapist’s resistance against it, to devote the human society as a valuable tool for investigating and treating human psychic phenomena.
Keywords : Psychoanalysis; Hermeneutics; Freud; Resistance; Defence.
시작하는 말

현대 정신분석의 흐름을, 정신분석이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성장하고 인정받기를 원했던 프로이드의 관점을 통해 한번 본다면, 정신분석은 그의 염원을 거스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후대의 정신분석가들이 반드시 창시자인 프로이드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을 시작한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21세기의 정신분석가들에게, 정신분석이 자연과학으로 성장하고 남기를 바랐던 그의 염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130여 년의 정신분석 학계의 여정은 보다 합당한 이론이자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되기 위한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이었다. 과학의 한 가지로서의 정신분석의 지위에 회의를 품고 비판했던 안팎의 목소리와 인간의 정신을 자연과학적 대상으로 삼고 관찰하는 것이 과연 성공적일 수 있는가 하는 내부로부터의 자성이 이 진화의 흐름을 주도했다. 이 흐름에 큰 영향을 준 철학적 사상으로 하이데거와 가다머로 대표되는 현대 해석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해석학은 19세기의 자연과학적 인식론과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철학계의 움직임으로 20세기에는 철학과 과학, 신학, 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Palmer 1969). 현대 정신분석은 해석학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 환자를 관찰의 대상으로 하여 치료자의 객관적인 관찰에 의존하던 정신분석을,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맺음에서 생겨나는 의미를 함께 발견하는 것으로 정신분석의 과정에 새로운 개념을 더했다. 관심의 중심이 환자의 증상의 원인(cause)에서 환자의 의도(intention), 혹은 이유(reason)와 서사(narrative), 즉 의미(meaning)의 이해(understanding)로 옮겨지면서, 정신분석은 치료의 한 방법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이해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혔다.

해석학적 영향은 정신분석을 정신세계의 연구에 있어서 현대적인 방법론으로 거듭나게 하고 정신분석의 영역을 인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는데 기여했으나, 이에 따르는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Edelson (1985), Gedo (1997), Friedman (2000), Ricoeur (Friedman 2000 재인용), Grunbaum (Fusella 2014 재인용) 등 여러 정신분석가와 철학자들이 해석학의 잘못된 적용을 우려했다. 그들은 해석학적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드의 초심리학 이론을 부정하고 객관적 관찰의 태도를 간과하여 정신분석의 자연과학적 지위와 방법론이 타격을 입을 것을 염려했다. 저자도 현대 정신분석이 해석학적 사조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해석학의 개념을 정신분석에 접목했을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석학의 함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논문은 해석학의 함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신분석이 인간의 정신현상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타당성 있는 도구로서 지속적으로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서 잃어서는 안되는 가장 핵심적인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도록 독자들을 독려하고자 한다.

정신분석에 대한 끝나지 않는 논쟁

정신분석이 처음부터 외부로부터 받아온 공격은 정신분석이 “거짓 과학 pseudo-science”이라는 것이었다(Wallerstein 2009).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Popper가 정신분석은 허위 여부를 입증할 수 없는 거짓 과학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Blight 1981 재인용). 정신분석을 꾸민 이야기나 광신적 믿음으로 치부하는 원색적인 비난부터, 자연과학일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체계적인 공격까지,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이 과학적 학문의 지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프로이드도 이러한 비난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1900년 즈음 과학계의 주류였던 모든 것을 물리학적 혹은 화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Bruke’s school)에 영향을 받아, 프로이드도 정신현상을 그런 관점의 기반 위에 세우기 위해 무모한 도전장을 던졌다(Freud 1895). 비록 그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프로이드가 얼마나 과학적인 정신분석을 염원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물리학적 원리로 정신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지만(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분석이 거짓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현대 물리학의 거장인 파인만(Feynman 1998)이 현재 검증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추론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하트만(Hartmann 1973), 라파포트(Rapaport) (Fusella 2014 재인용), 브랜너(Brenner 1968), 왈러스타인(Wallerstein 1986) 등의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정신분석의 방법론 또한 실험적으로는 검증할 수 없으나, 분석상황 안에서 임상적으로 검증가능한 과학적 추론으로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정신분석을 자연과학의 한 가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Blight 1981; Gedo 1997).

정신분석이 1세기 넘게 치렀던 또 다른 안팎에서의 공격 혹은 논쟁은, 정신분석이 어떤 학문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Gedo 1997).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적 태도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정신분석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하는 방법론에 관한 논쟁이다. 여러 분야의 학문들이 제각기 다른 분야의 진리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론(인식론[epistemology])으로 채택하는 것은, 크게 자연과학적인 방법론과 해석학적인 방법론으로 나뉠 수 있다. 자연과학적 방법론은 객관적인 관찰과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검증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방식이다. 해석학적 방법론에서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관찰을 통해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고, 대화와 참여를 통해 의미를 찾는 것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Palmer 1969). 물질적 세계관이나 인간의 관찰하는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으로 인해, 21세기의 모든 학문들은 이 두 방법론을 양극화하기 보다는, 비율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혼합된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정신분석 또한 그렇다.

21세기를 통틀어 정신분석학계의 중심에는 자연과학과 해석학적 방법론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Wallerstein 2009). 브랜너(Brenner 1968), 왈러스타인(Wallerstein 1986)과 같은 분석가들과 그룬바움(Grunbaum) (Gedo 1997 재인용)과 같은 철학자들은 정신분석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따르며 이 관점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신분석가인 스펜스(Spence 1993), 길(Gill 1988), 심리학자인 스틸(Steele 1979)은 프로이드의 메타심리학을 배척하면서 정신 분석은 자연과학적 타당성을 찾는 학문이 아니라, 해석학적 상황에서 경험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정신분석이 어떤 학문인가에 대한 수십년 간의 논쟁을 통해 현재의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이 자연과학이나 해석학 중 한쪽의 방법론만을 택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정신분석은 자연과학과 해석학의 방법론이 합쳐진 과학이라고(Ricoeur 1977; Friedman 2000) 믿는다. 저자 역시 정신분석은 양쪽의 방법론이 균형을 이루는, 그러해야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에서의 해석학의 영향은 치료자의 관찰자의 역할에 회의를 품고, 참여자로서 그리고 환자와 함께 하는 대화와 경험하는 것을 통해, 두 참여자의 존재론적인 발견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현재의 정신분석학계의 분위기에서 인문학적, 즉, 해석학적 색채가 너무 짙어져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태도와 심리적 원인-억압하는 것과 저항-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 역동적인 가설에 대한 검증과 해석은 점차 덜 쓰여져서 녹이 쓴 도구와 같이 되어가고 있다. 대신, 치료관계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경험, 공감과 직관, 참여와 공동창조(cocreation)의 개념은 점점 더 불티나게 팔리는 아이템처럼 거의 모든 논문들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해석학적 관점은 전적으로 받아들여 아예 해석학적 정신분석으로 자리매김을 한 학파들(대상관계이론부터 시작하여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과 상호주관주의 학파[intersubjective school], 대인관계 학파[interpersonal school]에 이르기까지)이 최신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해석학의 의의

해석학은 고대의 중요한 문헌들의 의미를 수천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들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하는 학문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이나 법전, 문학의 텍스트가 주된 초점이었으며, 특히 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텍스트의 이해에 대한 물음에 초점을 두었던 해석학은 19C 후반에 와서 이해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시선을 더 확장하고 심화하게 된다(Palmer 1969). 여기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사회를 평정했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낭만주의(18세기)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원리를 도출하여 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자 했던 계몽주의와,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토대로 계몽주의 사조에서 도외시 되었던 인간의 감정과 주체성을 중시한 낭만주의는 현대 문명을 떠받치는 두 개의 거대한 초석이다. 해석학의 발전은 바로 이 낭만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이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물음, 이해라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깊이 있는 성찰로서의 해석학은 신학이나 문학을 넘어서 인간과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고, 인식론적 또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하여 현대 철학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슐라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와 같은 걸출한 해석철학자들이 있으며, 현대 해석학의 대표적 인물이 가다머이다(Palmer 1969).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성찰은 자연과학적 방법론, 즉 객관적 관찰을 통해 진리를 이해한다고 믿었던 19세기의 자연과학적 패러다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해석학자들은 인간이 객관적으로 관찰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객관적 관찰과 합리적 이성이 인간성의 주된 요소라는 가정 아래 도출되었던 많은 신념들에 의혹을 제기하게 되었다. 합리성과 객관성, 이성과 지성, 보편적 원칙과 규율을 중요시했던 가치관들은 이제 그 진정성과 가치를 의심받게 되었다. 해석학적 관점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신화이고 인간의 착각의 산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가다머(Gadamer 1975)는 이렇게 불완전하고 충분히 객관적이거나 이성적일 수 없는 인간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 각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다머의 선입견이란 개개인의 경험, 그가 속해 있는 문화와 전통 등,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다층의 선이해를 통틀어 의미한다. 그는 선입견을 모든 개개인의 지평이라고도 했는데, 서로가 다른 존재의 새로운 지평을 만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세상을 향한 이해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가다머에 의하면, 지평이 만난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즉 해석학적 상황을 통해 가능하다. 현대의 해석학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기존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 두 주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이해가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이해란 고정된 개념일 수 없고,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이해의 연속이다(Palmer 1969). 이제, 객관적 관찰자인 인간과 관찰의 대상인 세계로 인식되었던 세계관은 낡은 유물이 되었고, 세계와 진리에 대한 참여자로서 주관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중심에 서서, 인간의 감정과 직관, 비합리성, 개개인의 차이 등의 가치가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현대 해석학과 현대 정신분석학

정신분석의 창시는 자연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문학이 태동하여 자연과학의 부족을 메꾸기 시작한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즉, 정신분석은 태생적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통합된 결정체이다. 프로이드가 최면을 포기하고 브로이어의 대화 치료 talking cure에서 정신치료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던 때부터, 이미 해석학적 개념은 암묵적으로 정신분석에 녹아 있었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의 치료원리로서 치료자의 객관적 “관찰”과 이미 존재하는 심리적 “원인(cause)”에 대한 “설명(explanation)” (해석[interpretation])을 명시적으로 강조하였다. 또 초심리학 이론(metapsychology)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신현상의 보편적인 원칙(쾌락원칙, 현실원칙, 이중 욕동 이론)과 마음의 근본 요소와 구조(초자아, 자아, 이드, 무의식, 의식 등)를 밝히고 설명하고자 했다. 즉,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은 치료자는 객관적 관찰자로서 대상인 환자의 무의식의 원인(억압하는 것)을 밝혀내고 설명(해석)하여 환자의 심리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it brings about an advantageous alteration of the ego…”; Freud 1940, p.179) 이다. 치료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저항, 전이, 역전이또한 관찰과 해석a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처럼 프로이드가명시적으로 내세운 원리와 원칙들은 자연과학적 인식론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프로이드가 발견한 많은 개념들(전이, 저항, 역전이 등)이 암묵적으로 해석학의 개념 위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이드는 자연과학이 물체를 대상으로 하듯이인간의 정신현상을 대상으로 한 객관적 관찰만으로는 진정한 이해와 치료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임상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프로이드가 최면을 포기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정신분석을 창시한 것에서부터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저항과 전이, 역전이를 정신분석 과정의 주요 개념으로 세운 것에서, 치료자와 환자가 함께 참여하는 치료과정에서 새로운 경험과 서사가 만들어지고 이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는 초지일관 치료자의 객관적 태도와 관찰에 바탕을 둔 해석이 가장 핵심적인 치료인자라고 밝힘으로써 정신분석의 자연과학적 토대를 확실히 하고자 했다.

프로이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은 프로이드의 자연과학적 정신분석을 계승하여, 치료자의 객관적 관찰자의 역할과 과학적 태도를 강조하였다(one person psychology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영국과 유럽에서 정신분석은 보다 인문학적인 색채를 띄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이에 해석학이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해석학의 개념은 20세기 정신분석의 방향을 크게 돌려놓았다. 대상관계 심리학은 환자와 치료자의 상호작용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참여자로서의 치료자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전이와 역전이의 상호작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치료자는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역할 보다는 분석상황의 참여자로서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내용물로서의 무의식적 욕동(unconscious drive)은 계속 창조되고 변화하는 현상으로서의 판타지(phantasy)로 대체되었다. 대상관계 학파의 분석가들은 생리학적인 토대위에 세워진 프로이드의 초심리학을 밀어내고, 순수하게 심리학적인 개념인 판타지를 정신분석 이론의 중심에 둔 것이다. 그 이후에 출현하는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 상호주체 심리학 (intersubjective psycholgoy), 대인관계 심리학(interpersonal psychology)과 같은 관계학파(relational school)에서는 아예 정신분석상황의 본질을 해석학적 상황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b 코헛(Kohut 2010)의 자기심리학은 치료자와 환자 관계에서 공감적 환경을 통해 창조되는 새로운 상태를 강조하였다. 그는 정신분석의 치유 효과가 관찰에 따르는 통찰보다는 공감적 환경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코헛에 따르면 환자는 공감적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자기(self)로 변모하는 것이다. 상호주체 심리학이나 대인관계 심리학에서는 환자와 치료자를 대칭적 관계로 보며 두 주체가 만나 상호작용하는 것을 분석의 본질로 보았다. 그리하여 환자와 치료자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두 주체가 함께 경험하며 의미를 창조하는 것, 즉 공동창조(co-creation) 자체에 정신분석의 의의를 둠으로써, 정신분석의 중심에 해석학적 상황을 안착시켰다.

또한 개별 정신분석가 중에 Schafer (1976)는 프로이드의 기계적이고 고정된 내용물 중심적인 초심리학을 배격하고 “Action language” (행동언어)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는 의미를 정신분석 상황에서 찾아내는 것에서 정신분석의 의의를 찾았다. 그의 action language가 프로이드의 초심리학 전체를 대체할 만큼 다른 분석가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지만, 인간 정신현상이 기계적이고 고정된 내용이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그의 관점은 이후에 많은 분석가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분석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해석학적 분석가 중에는 스펜스가 있다. 그는 저서 역사적 진실과 서사적 진실(narrative truth and historical truth) (Spence 1982)을 통해서 정신분석은 환자와 치료자의 분석상황, 즉 해석학적 상황에서 새로운 서사, 이야기가 창조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였다. 그는 새로운 서사를 통해 환자가 자신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정신분석의 의의이며, 해석의 과학적 타당성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가다머의 해석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환자가 치료자와의 분석상황, 대화와 경험에서의 지평융합을 통해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고, 이것이 환자가 자기 존재에 대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해석학적 개념은 자연과학적 방법론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보완하고,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관점을 통해 정신분석의 발전을 견인했다. 프리드만(Friedman 2000)은 해석학적 관점이 정신분석에 시사하는 교훈은 정신분석가들이 환자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신의 이론과 원칙이 완전하다고 맹신해서는 안되며, 여러 다양한 이론과 관점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21세기의 정신분석가들은 환자의 정신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신과 정신분석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많은 관점과 이론에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참여자로서의 분석가와 관찰자로서의 분석가의 역할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고 관찰과 해석, 참여와 공감과 지지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석학의 함정

이제 많은 정신분석가와 철학자들은 정신분석은 자연과학과 해석학이 접목된 하이브리드 과학(hybrid-science)이라고 생각하고 있다(Wallerstein 2005). 전화기의 수신부와 송신부가 어느 하나로만 전화기가 될 수 없고 반드시 두 부분이 함께 해야 전화기의 역할을 할 수 있듯이, 정신분석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이나 해석학적 방법론도 그러하다. 저자도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만으로는 정신분석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고, 해석학적인 관점의 도움을 받아야만 인간 정신세계의 진실에 좀더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다. 해석학적 관점은 정신분석을 방법론적으로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었고, 정신분석의 시계를 넓혀서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와 문화 전반에 정신분석이 활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독자에게 제안한다. 프로이드가 해부학이나 생리학적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증적 증상을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해, 초심리학 이론의 바탕 위에 정신분석이라는 치료방법을 발명했을 때부터 시작하여, 정신분석은 여러 다양한 이론과 관점들의 도움 아래 진통을 겪으면서 현대적 학문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 진화의 역사 속에서도 변할 수 없는 정신분석의 본질은 무엇일가? 정신분석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변증법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정신분석의 본질에 관한 질문에는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한 지점으로 환원되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즉,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정신분석의 본질은 자연과학적 태도에 입각한 “관찰(observation)”이고, 정신분석의 목적은 인간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treating)”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이드가 지키고자 했던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Freud (1924, p.190)는 정신분석 운동과 그 역사에 관한 소개를 부탁받아 쓴 짧은 글의 제목을 “정신분석: 마음의 숨겨진 것 찾기(Psychoanalysis: Exploring the Hidden Recesses of the Mind)”로 붙였다. 이 제목은 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의 핵심 본질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프로이드(Freud 1925, p.40)가 환자의 저항과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억압(repressed)된 무의식적 현상을 찾아내는 것을 정신분석 과정의 핵심으로 여긴 점에서 정신분석의 본질을 객관적 관찰에 두었으며, 또 그의 “이드(id)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도록(where id was, there shall ego be)” (Freud 1933, p.80)이라는 격언은, 그의 정신분석이 구조적, 기능적 변화(structur-al, functional change)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신분석의 본질이 관찰이고 그 목적은 치료라는 관점이 도전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분석가들은 자신의 요새를 감추려는 환자의 저항과 힘겨운 작업에 좌절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 현상을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 제대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가쉽다. 이로 말미암아, 분석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심쩍은 관찰보다는 실현가능한 목표로 ‘이해’와 ‘새로운 서사’의 발견을 중시하는 흐름에 편승하여 좌절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보다 편안한 길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위기가 세를 확장하면서, ‘이해’ 자체가 정신분석의 본질이자 목적이라는 관점을 분석가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헛이 공감을 치료의 도구이자, 본질로 강조한 것이나, 상호주관주의 학파(inter-subjective school)나 대인관계 학파(interpersonal school) 등, 관계 학파(relational school)에서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서사의 이해를 중심에 두는 것이 모두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을 “이해”에 두려고 하는 경향과 일치한다.

저자는 해석학적 관점의 “이해(understanding)”가 관찰에 앞서 더 근본적인 정신분석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주관적 관점에 의지하는 것으로, 이것을 본질로 삼았을 때 정신분석은 과학적 토대 위에 세워질 수가 없다. 치료자가 객관적으로 관찰한 것을 환자도 관찰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리고 그 관찰을 토대로 환자는 자신의 행동과 그 이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통찰)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찰은 환자의 내/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치료자의 객관적인 관찰이 얼마나 가능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정신분석의 방법론에 대한 논쟁으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도록 정신분석의 이론과 기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객관적 관찰이 완벽할 수 없으니 정신분석의 본질로서 관찰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완벽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한다는 이분법적 패착에 빠지는 셈이다.

정신분석의 발전은 환자의 변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가들은 변화를 가져오는 더 효과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연구해왔다. 억압된 무의식의 내용물을 관찰하여 환자가 그것을 의식화하도록 돕기 위하여,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평면적인 관찰에서 시작하여, 환자의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전이적 상황(Gill, Josep), 치료과정의 상호작용,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판타지와 의미들(Klein, Spence), 치료자의 역전이적 상연(Heiman)과 레버리(Ogden), 분석의 내용 뿐만이 아닌 과정과 형식에 이르기까지 더 효과적인 입체적 관찰을 발명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대 정신분석은 해석학의 도움을 받아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관찰이 가능하도록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해석학적 관점은 필연적으로 “관찰”을 평가절하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현대 해석학 자체가 진리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자연과학적 관찰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세워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미첼(Mitchell 1998), 슬로호버(Slochower 1996), 비욘(Bion 1987)과 같은 분석가들은 변화를 지향하는 관찰의 태도가 치료자가환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권위적인 태도에서비롯되며, 전능감을 추구하는 치료자의 역전이라고 비난했다. 관찰자로서 분석가의 지위에 권위를 부여하여 환자의 문제를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환자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극단적으로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분석가의 태도는 반드시 경계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추가 반대편으로 너무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분석가들은 분석상황의 상호작용의 순간을 초미세하게 포착하거나, 매 순간 창조되는 새로운 서사의 발견에 집착하면서, 관찰의 한계에 맞닥뜨린 분석가들은 직관(Bion 1967; Ogden 2016)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것, 설명할 수 있는 것 보다는, 치료자가 느낀 것, 환자와 치료자가 공감한 것이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진리의 한 조각이며 그것으로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달성된 것으로 생각하는 분석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 과연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 관찰과 변화(치료)를 포기하고 이해와 새로운 의미의 발견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프로이드가 우려했던 것이 바로 해석학의 함정-즉, 정신분석이 지나치게 인문학적으로 치우쳐, 우연과 직관에 의존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계만이 아니라 해석학의 영향이 현대 문명 전체로 확장되면서 자연과학적 태도에 적대적인 태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해석학계 밖은 물론 그 안에도 존재한다. 해석학자 리쾨르(Ricoeur 1977)는 면밀한 관찰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해석학적 상황은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Friedman 2000 재인용).

관찰과 변화지향적 태도에서 멀어지면 정신분석의 과정은 “저항(resistance)”에 대처할 힘을 잃게 된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모든 저작을 통하여 정신분석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질문에 저항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이라고 대답한다(Freud 1914; Ricoeur 1977). 정신분석이 환자와 치료자에게서 일어나는 치료과정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저항에 힘을 쓸 수 없다면, 결국 정신분석의 주된 작용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매순간 창조되는 해석학적 상황(분석상황)은 무수한 서사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때 분석가가 객관적 관찰자의 태도와 변화 지향적 태도를 중심에 두고 지키지 않는다면, 치료자와 환자에 의해 채택되는 의미와 서사는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변화를 방해하는 저항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 관찰이 결여된 해석학적 상황은 정신분석 상황을 지나치게 지지적으로 만들기 쉽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나친 지지적 태도는 변화에 대한 환자의 동기를 약화시켜 퇴행을 부추긴다. 제도(Gedo 1997)는 서사는 관계의 측면에서 만들어지기 쉽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은 서사를 만들 때 거의 배제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서사에 너무 큰 무게를 둘 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가리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환자가 끈질기게 억압하는 것들 기억하기를(의식화) 저항하는(반복강박) 것들은 간과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해석학적 상황은 태생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을 배격하기 때문에(Palmer 1969), 분석가들이 오히려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가 더욱 쉽다는 것이다. Friedman (2000)은 해석학을 정신분석적 기법에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고 바로 적용하려 한다면, 심각한 오류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자는 해석학의 함정은 진리탐구의 방법에서 자연과학의 허점을 찌르고 진정한 진리에 도달할 것을 목표로 했던 해석학이, 도리어 매우 쉽게 진리를 등지고도 스스로의 오류를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분석가는 객관적 관찰자로서, 또 치료자로서 환자와 비대칭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학적 관점은 환자와 치료자가 상호영향을 주는 관계임을 내세워 환자와 치료자의 대칭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부각시킨다(Mitchell 1998). 이는 얼핏 보기에 환자를 존중하고 치료자는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이 또한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환자는 치료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정신분석을 시작한다. 치료자에게서 환자에게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전달되어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 보다 더 넓게 더 깊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환자에 앞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자의 겸손과 환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태도는 동등한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중립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관점을 의심하며 시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하려 노력하며, 진정으로 환자에게 이득이 될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와 비대칭적 관계를 인정하는 정신분석가는 보다 책임감을 느끼고 보다 윤리적일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환자와 치료자의 비대칭적 관계를 공공연히 언급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으나, 이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맺음

저자는 이 글의 초입에서 현대 정신분석의 흐름이 자연과학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프로이드의 염원을 가볍게 지나치고 있다고 하면서, 그의 염원을 낡은 유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뜻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것을 제안했다. 정신분석학은 자연과학적 태도로 시작되었지만 처음부터 암묵적인 해석학적 요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효과적인 관찰과 변화를 위해서는 해석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20세기의 정신분석은 자연과학과 해석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현대 정신분석은 점차 자연과학적 태도를 도외시하고 해석학적 관점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고 있다.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으로서의 관찰과 변화는 날이 잘 들지 않는 낫처럼 한구석에 던져져 점점 더 녹슬어가고, 대신 의미의 이해와 새로운 서사의 발견을 중요시하여 우연과 직관을 신상품 대하듯 반긴다. 이런 풍조가 바로 프로이드가 오래전 우려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가비록 명시적으로 우려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가 정신분석의 자연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려는 노력은 간접적으로 그의 우려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신분석은 해석학적 관점으로 더욱 풍성해지고 효과적이게 되었지만, 객관적인 관찰과 원인의 치료라는 과학적 태도는 손상되어서는 안되는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다. 저자는 정신분석의 본질이 객관적 관찰에 있고 목적은 치료라고 생각한다. 해석학을 정신분석에 접목하면서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을 손상시키는 결과도 함께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해석학의 영향으로 환자와 치료자의 서사적 의미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있는 현대 정신분석의 흐름은 환자와 치료자의 무의식적 저항을 다룰 수 있는 도구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정신분석 과정은 환자의 저항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해석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신이 외면했던 진실에 직면하도록 돕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인간의 정신현상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타당성 있는 도구로서 지속적으로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억압하는 것을 관찰하고 저항을 극복하고 변화하도록 돕는다는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적이 손상되어서는 안된다.

Acknowledgments

None

Conflicts of Interest
The author has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to disclose.
foot-notes

a 저자는 프로이드의 해석은 해석학에서 다루는 해석과는 근본적인 출발에서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프로이드는 객관적 관찰에 의해, 정신현상의 “원인(cause)”을 설명(explaining)하는 해석을 추구했다. 해석학에서 해석은 현상의 “의미(meaning)”, 즉 “이유(reason)”를 이해(understanding)하는 측면에서 해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b 해석학적 상황이란, 두 주체가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의미를 이해하여, 진리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Gadamer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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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2, 3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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