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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cation with Psychosomatic Patient:With a Clinical Vignette “When Words Are Unspeakable:A Bridge Beyond the Silence”
Psychoanal 2018;29:72-82
Published online October 31, 2018;  https://doi.org/10.18529/psychoanal.2018.29.4.72
© 2018 Korean Association of Psychoanalysis.

Eun Jin Jahng

Dr. Jahng’s Psychiatric Clinic, Seoul, Korea
Eun Jin Jahng, MD Dr. Jahng’s Psychiatric Clinic, 313 Teheran-ro, Gangnam-gu, Seoul 06151, Korea Tel: +82-2-501-7751, Fax: +82-2-501-7736, E-mail: joy-eunjin@hanmail.net
Received September 14, 2018; Revised October 4, 2018; Accepted October 4, 2018.
cc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s://creativecommons. 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Abstract

What should a therapist do if the patient has lost the ability to speak in sessions? How should the therapist understand and approach this ‘deadly silence’? Psychosomatic patients have poor ability to mentalize their experience, so they create a ‘shunt’ from emotional experience to body bypassing symbolic sphere. This makes psychosomatic patients vulnerable to expressing their emotions in words. With the case vignette ‘When words are unspeakable a bridge beyond the silence’ written by Wirth in a book “From soma to symbol” we observe how psychosomatic pathology arises, from inappropriate mirroring and poor containment; and how this escalates into a vicious cycle of sin and punishment in the patient’s conscience. This conscience scenario imprisons a talented and creative mind in a dark, silent place, wherein symbols and words are forbidden. This seemingly impossible task of providing silent patients with a ‘talking cure’ finds breakthrough with containment, and transformative thinking using therapists’ reveries.

Keywords : Psychosomatic, Containing, Dream thinking, Transformative thinking, Reverie
서론

환자가 죽음과 같은 침묵 속에 누워있다. 눈은 먼 곳을 응시하고 몸은 굳은 채 언어가 금지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녀를 돕기 위해 치료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은 말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치료(talking cure)이다. 하지만 말이라는 중요한 도구가 상실되었을 때, 치료자로서 우리는 환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까?

정신신체화(psychosomatic) 환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어떻게 처리(metabolize)하는지 내재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정신화(mentalize)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강렬한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 결국 처리되지 못한 강렬한 감정은 몸을 통해 표현(somatic discharge)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상징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 초기에는 신체적이고 비언어적인 표현과 단서만으로 작업해야 한다. Lemma(2015)는 이것을 “신체화된 경험(embodied experience)”이라고 설명했다.

‘금지된 언어와 침묵을 넘어서(When words are unspeakable:a bridge beyond the silence)’는 정신신체화 현상을 다룬 책인 “From soma to symbol”에 수록된 증례로, 치료자인 Wirth는 감정을 말(symbol)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몸(soma)을 통해 전달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Sloate 2016). 이 증례의 제목인 “금지된 언어와 침묵을 넘어서(When words are unspeakable: a bridge beyond the silence)”에 치료자가 말(word)이 금지된 상태(unspeakable)에서 말의 부재(silence)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소통 방식(bridge)을 찾는 길고 힘들었던 여정이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Wirth의 증례에는 해리, 폭식, 비만, 집에 대해서 의식부터 무의식에 걸친 여러 수준의 이해와 해석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전개되고 치료자가 역전이를 중요한 치료적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Sloate 2016). 저자는 Wirth의 증례를 소개하면서 의식적인 말조차 소통하기 어려운 환자를 돕기 위해 치료자가 환자의 침묵 속의 소통을 어떻게 포착해야 할지, 즉 분석적으로 어떻게 듣고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처럼 타인의 증례를 재해석하는 시도, 특히 프로이트의 증례를 다시 살펴보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시도는 다양하게 있었다(Decker 1992; Reeves 1982). 이를 통해 증례에서 제시된 임상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설명을 적용해보면서 동일 임상적 상황에 대한 더욱 깊고 넓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Wirth의 증례를 통해 정신신체화 환자를 이해하는 것, 즉 말조차 가능하지 않은 환자의 가장 깊은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치료자의 개입(intervention)이 환자를 변화시키는 현상을 치료자의 공상(reverie), 변환적 사고(transformative thinking)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고 설명해보고자 한다.

본론

증례 요약

Kate는 일류 광고회사의 제작 감독이자 교수 그리고 성공적인 화가 겸 작가이다. 30대에 이미 눈부신 커리어를 쌓았으며 인생 최고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은 공허하고 죽어 있다. 이러한 내면과 외면의 극적인 대비는 Kate의 긴 치료 과정 중 만나게 될 여러 극단적인 분열(split)의 예고편이었다. 첫 만남에서 Kate는 두 가지 주제는 자신이 준비되기 전까지 다루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가족에 대한 험담’이었다. 치료자를 찾아왔을 때 Kate는 최근 27 kg을 감량하였지만 여전히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비만이었다.

Kate는 백인인 어머니와 흑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 인생에서 혼혈이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의미로 작용했다. Kate는 흰 피부와 밝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이 ‘흑인이 되기에는 너무 희고, 백인이 되기에는 충분히 희지 않다’ 여겼다. 그녀에게는 언니와 이복 오빠가 한 명씩 있었다. 언니는 Kate와 달리 어두운 피부와 짙은 색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이복 오빠도 혼혈이었지만 정확히 어떤 인종인지, 그리고 오빠의 친엄마는 누구인지 불문율처럼 집안에서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인도제도 출신이었고 Kate는 미국의 서부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부모님과 문화적 괴리감을 느꼈다. 또 그녀는 백인들이 주로 사는 고급 주택가에서 성장하였는데, 이사 초기에 백인 이웃들이 보냈던 멸시와 차별의 눈빛은 그녀가 자란 동네에도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회는 물론 가족 내에서도 그녀 자신이 동질감을 느끼거나 소속감을 느낄 대상은 없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내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언어적 소통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Kate의 집에서 언어적 소통은 매우 드물었다. 이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버지의 침묵과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고함 그리고 때때로 둘 사이의 언쟁이었다. 높은 학력과 사회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외모 때문에 가정부나 노동자 계급으로 오해받는 일이 흔하였다. 자신이 외지인이라는 느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그리고 이러한 나는 살 권리가 없다라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Kate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자였지만 정작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독실한 신자로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 모두에게 높은 기대치를 제시하며 엄격하게 따르도록 종용했다. 누구라도 불복종이라는 ‘죄’를 지으면 가죽 벨트로 체벌했다. Kate가 사춘기에 진입하여 자연스럽게 독립과 자립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자 어머니는 독립은 가족을 배신하는 행위라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또한 성(sex)은 죄스럽고 더러운 것이며 성에 관해 언급했던 유일한 말은 Kate를 출산할 당시 어머니의 ‘내부가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기 중심적이었고 변덕스러웠으며 딸들을 수족처럼 부렸는데, 언니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좋은 딸’, Kate는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나쁜 딸’이었다. 이처럼 분열은 Kate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매우 익숙한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Kate의 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비난하고 침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어난 Kate의 체중은 폭식으로 점점 더 늘어만 갔다. 폭식은 어머니의 비난과 참견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음식을 통한 행동화였다. 비난과 폭식 그리고 체중의 증가라는 악순환을 거치면서 Kate는 자신이 실패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치료자는 Kate의 몸이 모순적인 두 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느꼈다. 몸에 대해 다루지 않고 위축된 그녀의 몸은 “저를 보지 마세요(Don’t notice me)”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몸의) 나를 보지 못할 수 있나요(How can you not notice me!)”라고 말하고 있었다.

Kate의 아버지는 매우 수동적이었고 포악한 어머니로부터 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녀는 만 4세경 아버지가 “말 그만하고 그냥 밥이나 먹어”라고 고함쳤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경험은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상기시켜주는 목소리로 Kate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이로써 Kate는 말이 금지된 채 무의식적으로 몸을 통해서 넘쳐흐르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Kate는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였고 만 12세와 16세에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머니는 학교 관계자와 Kate의 체중만 논하고 돌아왔으며 그 주제는 가족 내에서 다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Kate의 절박한 구조 요청-자살 시도-는 또다시 침묵 속에 묻히고 말았다.

침묵 속에서 갇힌 Kate와 연결하기 위해 치료자는 Kate가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소통의 창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하나는 그녀의 예술 작품이었다. Kate가 말로써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고, 낯설어 했기 때문에 치료자는 그녀가 창작한 예술 작품을 치료실에 가져올 것을 제안하였다. 치료자가 느끼기에 Kate의 작품은 복잡한(intricate) 패턴이 있고, 재미있었으며(playful), 꼼꼼하고 세밀했는데, 이것은 후에 알게 된 Kate의 생활 방식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었다.

Kate는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매우 회피하였다. 언젠가 Kate는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세션 중에 읽었는데, 여기에는 Kate의 비만과 몸에 대해 비난으로 가득했다. 치료자가 편지에 대한 Kate의 감정을 약간만 탐색하려 해도 그녀는 침묵으로 빠져들었고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 눈맞춤을 피하였다.

치료자는 이런 해리 상황에서 Kate와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Kate가 말을 잃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신체적 단서(physical cue)-눈동자의 움직임, 피부와 표정, 포즈의 변화-에 집중하며 그녀와 소통을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동시에 Kate가 이것을 몸에 대한 침범으로 느끼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무거운 침묵을 견디며 치료가 3년 차가 되었을 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Kate는 점점 더 치료적 틀이 주는 일관성에 편안해 했다. 변덕스러운 어머니와 달리 명확한 기대치-시간, 비용, 역할-안에서 치료자와 Kate는 분석적 공간(analytic space)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Kate가 회사에서의 실수를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살 시도는 주말 동안 일어났는데, 치료자는 Kate가 위기 상황에서도 치료자에게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탐색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만일 치료자가 Kate의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자살 시도가 성공할 경우 남겨진 치료자가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것을 걱정해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치료자는 Kate가 자신을 위험에 몰고갈 정도로 치료자를 보호하려는 절실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점 Kate가 해리로 도피하는 시간과 정도가 심해졌다. 어떤 때는 15분간 경직된 자세로 웅크린 채 침묵을 지켰다. 이시기에 치료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매우 힘들었다. Kate에게 질문을 하거나, 해석을 할 때, 심지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리가 유발되었기 때문이다. 치료자 내면에서도 무기력감, 공허감, 외로움 그리고 절망이 짙어졌다. 점점 더 분석적 공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치료자는 Kate가 치료자를 보호하려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묵과 단절의 이 시기가 힘겨웠지만 치료실은 물론 치료자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Kate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해리의 여러 의미가 밝혀졌다. 해리는 Kate의 정신이 완전히 와해되는 것과 자살 시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침묵으로 Kate는 자신의 숨겨진 광기와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감정을 영원히 봉인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해리가 Kate의 몸을 통한-말의 부재를 대신하는-소통 수단이라는 것을 치료자가 이해하면서 Kate의 내면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생겼다. 치료 3~4년 차경 카우치 위에 누운 Kate가 언제나처럼 침묵 속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움찔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Kate를 관찰하던 치료자는 자신의 역전이-특히 몸으로 전달되는 제한받는 느낌, 배와 가슴이 죄어오는 불편감, 사고가 방해받는 기분-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치료자의 머릿속에 매우 낯설고 놀라운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치 SS 대원이 감옥에 갇혀 절망에 빠진 Kate에게 고함을 치며 머리를 방망이로 때리는 이미지였다. Kate의 성장 배경은 나치와 연관성이 없었기에 이 이미지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치료자는 고민 끝에 이미지를 Kate와 공유하기로 하였다. 놀랍게도 Kate는 해리 도중 강철 야구 배트로 머리를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치료자는 이것을 어머니에게 벨트로 맞았던 기억과 공명하는 경험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점차 해리 중에 Kate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경험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씩 치료자와 공유하게 되었다. Kate 머릿속의 목소리는 세션 중에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고, 만일 이것을 발설할 경우 자신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다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렇게 금지된 것(unspeakable)을 말하는 것(speaking)을 Kate가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치료자는 Kate의 무의식적 공포를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포착할 수 있었다. 상징적 사고의 부재로 Kate는 머릿속 협박의 소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했고 이 큰 고함 소리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켰다.

다음은 Kate가 이 시기에 경험한 것을 후에 글로 적은 것이다.

“불안해지면, 나는 카페트나 벽지 등 점점 더 커지는 내 머릿속 목소리에서 주의를 돌릴 만한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 목소리는 저에게 세션에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명령해요. 나는 눈을 깜박이고, 머리를 가로저어서 거부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틱이 생겼습니다. 기억해보면 세션을 제외하면 움찔하고자 하는 요구를 느낀 적이 없고, 이것은 억제하기 너무나 힘들어요. 나는 그 목소리가 외부에서 오는 것이고, 이것이 선생님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한다고 믿었어요. 거의 침묵만 있었던 세션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때 제 상태를 존중해주셨어요(gave me space to just be). 아마도 그 당시 내가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나는 벽과 바닥의 무늬에 시선을 고정했고 그때 벽들이 숨을 쉬고 있다고 느꼈어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 고문은 어머니를 만족시키지 못한 나쁜 딸 그리고 자신의 몸을 폭식과 비만으로 학대하는 나쁜 사람인 자신에 대한 처벌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가장 큰 전환점은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치료자가 Kate의 머릿속의 고함 소리를 두려워하거나 압도되거나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Kate가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Kate는 이에 안전감을 느꼈고 세션 내에서 자유연상이 증가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문이 어머니와의 분화(differentiation)와 분리를 회피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치료에 전환점이 있었지만 Kate를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마비시키는 고통은 여전히 강렬했고 치료실 밖에서 고립이 심해졌다. 치료자는 이에 즉흥적으로 Kate에게 글쓰기를 또 다른 소통 수단으로 제안하였다. 글은 Kate에게 직업적으로 익숙한 작업이었고 이것이 치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 글쓰기는 Kate에게 안전한 사적인 공간을 제공하였고 치료자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동안 Kate는 내면 세계에서 어떤 고문의 시나리오가 있고 이것의 의미를 치료자와 함께 탐색하면서 살아 남는 경험을 하였다. 치료가 4년 차 말에 이르면서 새로운 주제로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Kate의 집으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이었다. Kate의 집은 혼돈 그 자체였다. Kate는 매일 밤 집에 돌아가 망가진 작은 침대에 시트도 깔지 않고 자신의 몸을 눕혔다. 이 침대는 틀이 부서지고 사선으로 누워도 다리가 매트리스 밖에 매달리게 될 만큼 크기가 작았다. 바닥은 수많은 책과 옷더미로 가득했고 쓰레기도 버리지 않았으며 우편함은 확인하지 않은 편지로 가득했다.

그녀의 아름답고 꼼꼼한 예술 작품과 대조되는 집의 상태는 여러 겹(layer)의 의미가 있었다. 집은 Kate에게 고문실이자 감옥이었다. 그녀는 집에 도착하면 폭식 후 쓰러지듯 잠들곤 하였는데, 이처럼 음식은 Kate를 집이라는 고문실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 또 그녀는 집에 들어가면 온몸을 두들겨 맞는 느낌을 경험하였는데, 이것은 이해 또는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물리적인 고통으로 재경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Kate가 감옥이자 고문실인 집에서 도망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응당 받아야 할 처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망가진 침대와 불결한 환경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나쁨에 대한 응징이었다. 또 집은 Kate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요새라는 의미도 있었다.

점차 치료실에서 고통의 장소이자 처벌과 응징을 통한 구원의 장소이기도 한 집으로부터 Kate가 탈출하는 과정이 일어났다. Kate는 세션 중 자신의 집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치료자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를 통해 치료자와 Kate는 정돈되고 효율적이고 존경받고 유능하며 책임감 있는 직장에서의 그녀와 지저분하고 감정에 압도되고 자신을 포함한 주변 모든 것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집에서의 그녀의 극명한 분열의 의미를 탐색했다. 집은 자율성과 분리에 관련된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Kate는 부모님을 절대로 집에 들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볼 때는 부모님의 비난과 침범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결정이었다. 무의식적으로는 Kate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자신 사이에 만든 첫 번째 경계였다. 처음에 이 해석에 대해 Kate는 부정하였지만 점차 자신이 부모님의 방문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또 Kate에게 집은 몸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무의식 속에서 몸과 집은 하나로 융합(merge)되어 있었다. 집이 지저분할수록 머릿속의 고함 소리가 커졌다. 집의 상태는 Kate의 정서 상태를 대변하였다. 이것도 일종의 무의식적 소통 방식이었다. 집의 더러움과 혼돈은 Kate가 압도되어 표현할 수 없었던 정서적 혼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집을 방치하고 파괴하듯이 Kate는 자신의 몸을 방치하고 파괴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이에 대해 매일 안전한 직장에서 혼란과 고통으로 가득한 집으로 가는 도중 거치게 되는 어둡고 낯선 이들로 채워진 거리는 가족 내에서 그녀가 느끼는 소외감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석하였다.

또한 Kate에게 음식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마취제이면서 동시에 자기 혐오를 재생산하는 도구였다. 자신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 이에 따라 처벌은 강화되어야 했고 마취제 또한 강해져야 했으므로 Kate의 인생에서 혐오와 처벌의 악순환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집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 Kate 내면에서는 새 침대와 깨끗한 린넨 시트 위에서 잔다는 것, 즉 자신이 혐오하는 몸에게도 편안함이 허락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과연 그것은 어떤 기분일지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Kate는 청소업체를 고용하여 집을 청소하고 정돈하였다. 쓰레기를 치운 바닥은 치료실 밖에서도 Kate의 내면에서 분석적으로 생각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집과 몸 그리고 폭식을 다루면서 Kate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또 다른 주제인 분노가 떠올랐다. Kate는 부모에 대한 분노를 느낄 때마다 자신이 공격성과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믿었기에 그녀의 분노가 부모님을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 이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면서 폭식과 해리가 발생했다. 폭식과 해리 모두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자 감정을 마비시키는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Kate가 분노와 폭식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노를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Kate에게 분리는 곧 배신이며 분노는 파괴라는 공식이 무의식적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Kate에게는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매우 큰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Kate에게 여러 변화와 성장이 있었지만 나쁨을 주제로 탐색하면서부터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신이 부하를 다루는 방식이 자기 중심적이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어머니를 닮았을지 모른다고 자책했다. 즉 자신이 엄마처럼 ‘무엇을 해도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Kate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를 예민하게 포착했기 때문에 이 분노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까 매우 두려워하였다. 이 두려움은 그녀가 쓴 글에 매우 생생하게 잘 나타나 있다.

“어떤 때는 싸우기보다는 조용히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더욱 쉬웠습니다.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 말을 그만 하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배운 것입니다. 나는 순한 사람이거나 괴물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중간이 없었죠. 모든 것이 흑백이었습니다.”

“나는 내 화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두렵습니다. 언성을 높이는 일은 드물지만, 나의 조용한 분노가 사람들을 울립니다. (중략) 어릴 때 나는 화를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울면 안 되었습니다. 학교 분위기는 “울면 더 울릴 거야(I’ ll give you something to cry about)”였고, 눈물은 곧 체벌의 위협 또는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기(first-class beating)”를 의미했습니다. 내 의견은 환영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했고,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짜증과 슬픔을 나 자신에게 돌렸고, 이것이 모두에게 안전한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중략) 그 방법이 그냥 더 편했습니다.”

이 시기에 Kate는 폭식과 몸을 방치하는 것이 자신을 ‘공격’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내면의 분노를 회피하는 방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처벌을 즐깁니다. (자신의 분노를 대면하는 것보다) 수동적으로 나를 세상에서 제거하고 셧다운(shutdown)하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처벌은 익숙하고, 대부분, 내가 응당 받아야 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해리-다른 표현으로 셧다운-의 또 다른 동력이 가학적 통제와 혼란 사이의 분열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라는 것도 다루어졌다. 이것은 어머니의 비난 또는 수치심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한 더 강력한 동기였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치료자가 환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준 것, 그리고 치료자가 환자의 머릿속 고문의 시나리오를 견디면서, 환자의 분노가 치료자를 해치지 않았다는 것을 Kate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분열이 약화되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커졌다.

나쁨을 다루면서 Kate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나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즉 양가감정을 포용할 수 있는 정신 내적 구조가 좀 더 생겨났다. 이 과정을 통해 Kate는 자신의 나쁜 점을 미워하고 없애려고만 하는 대신 좋은 점과 함께 배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이와 함께 새로운 질문과 통찰이 치료 상황에서 다루어졌다. 무엇이 그녀를 감옥에서 해방시키고 ‘정상’ 세계에 합류하게 해줄 것인가? 누구의 초대와 허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Kate는 이 질문을 통해 인생의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고 그동안 가족과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부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치료자는 식이장애 문제에 있어서는 정체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치료자의 머릿속에 자동차 바퀴에 설치하는 고정장치(boot clamp)가 떠올랐다. 이 연상을 이어가면서 음식이 Kate의 또 다른 버전의 분열-움직임 대 멈춤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폭식은 Kate가 필요한 영양분과 에너지를 제공하지 않고 그녀를 졸리게 하고 아프게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느리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그녀는 음식으로 자신을 멈추게 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또 자신이 계속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도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을 통해 Kate는 폭식과 처벌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형태의 삶이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치료 6년 차에 Kate는 체중을 감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3년에 걸쳐 건강한 방식으로 약 55 kg을 감량하였다. 다음은 체중 감량이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스스로 소외시켰던 자신을 세상으로 복귀시키는 결정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나는 세상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어요. 이건 체중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내 몸과 건강에 신경 쓰기로 결심했어요.”

“체중 감량은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나는 자전거를 탔고 운동을 다녔어요. 내 문제는 살을 빼면서 해결한 것이 아니었지만, 허리둘레처럼 줄어들었습니다. 나는 더 행복했고 다른 사람들도 이를 알았습니다.”

흥미롭게도 Kate가 45 kg을 감량하고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그토록 Kate의 체중에 관심을 표해왔다던 어머니가 체중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Kate는 어머니의 한계와 자기애적 병리를 좀 더 뚜렷이 인식할 수 있었다.

토론

Kate의 셧다운과 해리 이해하기

몸의 언어는 강력한 무의식적 소통 수단이다. 정신신체화 환자들은 정서적 경험을 상징적 영역인 언어로 처리하지 못하고 신체적 영역으로의 샛길(shunt)을 만들게 된다. 즉 Kate의 해리는 그녀가 처리하지 못한, 압도되는 감정 경험을 샛길을 통해 ‘신체화된 경험’으로 전환시켜 발생한 신체적 언어라고 볼 수 있겠다(Figure 1).

Kate의 어머니

Kate의 어머니는 매우 자기애적이다.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는 본인이 처리하기 어려운 힘든 감정을 Kate에게 투사하며 끊임없이 비난하고 비하한다. 이를 통해 Kate는 어머니 기분을 손상시키는 나쁜 대상(bad object)이 되었다. 어머니는 Kate의 체중-즉 몸-을 잔인하리만큼 일관되고 침범적으로 공격한다. Kate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도 체중에 관해서만 걱정했던 어머니가 45 kg을 감량한 Kate의 몸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상황을 통해 어머니가 Kate의 건강과 행복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어머니에게 Kate는 자기의 우월함과 힘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열등한 역할을 맡은 도구이다.

자기애적 어머니와 그로부터 분리를 소망하는 딸의 이야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Tangled 2010)에 잘 그려져 있다. 라푼젤이 갇힌 탑은 가짜 어머니 고델이 라푼젤을 세상에서 격리시키고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고안한 감옥이다. 고델은 갓난아기였던 라푼젤을 납치하였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마법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탑 안에서 고델과 단 둘이 살았던 라푼젤은 고델을 진짜 엄마로 알고 믿고 따르지만, 엄마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도 점점 커진다. 라푼젤은 18번째 생일 선물로 바깥 세상으로의 외출을 부탁하지만, 이는 좌절된다. 이때 고델이 부르는 노래 “엄마가 제일 잘 알아(Mother knows best)”는 고델이 어떻게 라푼젤에게 세상에 대한 불안감, 자신에 대한 불신감, 어머니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주는지 잘 보여준다. 결국 라푼젤은 고델의 교묘한 조작(manipulation)에 굴복하고 독립에 대한 청을 스스로 철회한다.

엄마가 제일 잘 알아(Mother knows best)

노래의 시작 부분에서 고델은 자신이 라푼젤의 외출을 반대하는 이유가 라푼젤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보호하고자하는 마음이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세상에! 라푼젤! 너는 꽃처럼 연약하고, 그저 작은 새싹일 뿐이란다. 널 안전하게 보호하려는거야. 아가야. 네가 우리의 둥지를 떠나는 날이 올 줄 알았어. 곧 그런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안 돼. 엄마를 믿어. 우리 강아지. 엄마가 제일 잘 알아. 엄마 말을 들으렴.

그리고 곧 세상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곳인지 라푼젤에게 겁을 주기 시작한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환경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탑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의 싹까지 잘라내려는 듯,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라푼젤의 외출이 고델 자신을 매우 화나게 한다는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복종을 강요한다.

저 밖의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이란다. 엄마가 제일 잘 알아. 어떻게 되든, 뭔가 꼭 잘못될 거야. 내가 맹세해. 악당과 폭력배들, 독초, 모래바람처럼 위험한 상황. 식인종과 병 그리고 전염병. 그리고 큰 벌레까지! 괴물 같은 이를 가진 남자들 그리고. 아! 그만두자. 너 때문에 내가 점점 더 화가 나잖니. 엄마가 여기 있잖니. 엄마가 널 보호해줄게. 예쁜아,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드라마 찍지 말고. 엄마랑 있으렴. 엄마가 제일 잘 알아.

여기서 고델은 라푼젤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혼자 남겨진 엄마는 쓸쓸하게 죽어버릴 것이며, 자신이 라푼젤을 키워준 은인 같은 존재라는 말을 반어적으로 뱉는다.

네 뜻대로 가 버려. 그리고 코뿔소에 치어버리던가! 니 맘대로 해! 강도 당하고 시체로 발견되겠지. 난, 그저 너의 엄마일 뿐이야. 내가 뭘 알겠니? 난 그저 널 씻기고, 입히고, 돌봐 준 사람일 뿐이잖니? 그래 가 버려. 날 버려두고. 난 그런 일을 당해도 싸! 내가 이 탑에서 쓸쓸히 죽게 내버려 둬. 너무 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어. 엄마가 제일 잘 알아.

여전히 라푼젤의 자존심을 더 짓밟아 자립의 가능성을 없애려는 듯 라푼젤의 행동과 몸에 대한 구체적이고 간섭하는 비난을 쏟아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라푼젤을 위한 조언이라는 듯 나쁜 뜻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너 혼자선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넌 엉성하고, 옷도 잘 못 입고,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잖아. 오! 맙소사! 세상 사람들은 너 같은 애송이를 산 채로 잡아먹을 거야. 넌 잘 속고, 순진하고, 나쁜 뜻은 아닌데… 좀 지저분하잖니. 얼빠지고. 음… 좀… 멍하고. 그리고 내가 보기엔 너 요즘 좀 뚱뚱해지고 있는 것 같아. 널 사랑하기 때문에 이걸 이야기해주는 거란다. 엄마는 널 이해해. 널 도우려고 여기 있는 거야. 라푼젤, 한 가지만 부탁할게. 다시는 이 탑을 떠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말거라.

라푼젤: (겁에 질리고 풀이 죽은 채 고델에게 안기며) 네, 어머니.

라푼젤의 순종에 기분이 풀린 고델은 라푼젤을 안아 준다. 어머니의 분노를 해결하여 일시적으로 ‘좋은 딸’이 된 라푼젤은 안심한 채 고델의 품에 안긴다. 두 사람 간의 마지막 대화를 통해, 고델이 여성으로 자라나는 라푼젤을 얼마나 견제하고 경쟁하는지 잘 볼 수 있다.

고델: 널 매우 사랑한단다. 아가야(I love you very MUCH, dear).

라푼젤: 저는 엄마를 더 사랑해요(I love you MORE).

고델: 난 너를 가장 사랑한단다(I love you MOST).

정신화 능력(mentalization capacity)은 양육 과정에서 부모의 적절한 거울 비추기(mirroring)를 통해 발달한다. Kate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라는 왜곡된 거울을 통해 자신이 흉측하고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믿게 되었다. 라푼젤이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을 인식하지 못했듯, Kate 또한 자신이 가진 예술적 능력과 글에 대한 재능을 정체성과 자신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다만 예술이 어머니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보호막 기능을 했기에 예술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치 라푼젤이 ‘엄마가 제일 잘 알아’에서 고델의 칭찬과 걱정을 가장한 비난과 억압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이듯이, Kate도 어머니의 비난이 과도한 공격이라는 자각 없이 조종당한다. 이 과정을 통해 Kate는 또다시 ‘좋은’ 어머니를 배신하고 세상에 나가고 싶어하는 ‘나쁜딸’이 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지저분하고 불편한 감옥-Kate의 집-에 가두고 매일 밤 이런 죄에 대한 고문-폭식과 망가진 침대 그리고 해리-을 통해 처벌한다. 이는 라푼젤이 탑을 탈출할 수 있는 물리적 힘과 능력이 있는 18세가 되었지만 ‘엄마가 제일 잘 알아’를 듣고 스스로 탑에 남는 선택을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고델이 라푼젤이 살이 찐 것 같다며 공격하듯, Kate의 어머니도 Kate의 몸을 비난한다. 고델이 늙지 않는 외모를 위해 라푼젤을 유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통해 고델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가진 불안감(insecurity)을 추측해볼 수 있다. 어쩌면 Kate의 어머니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 Kate의 언니는 좋은 대상(good object)으로 흰 피부와 아기 때 예쁜 외모로 칭찬을 받은 Kate를 나쁜 대상(bad object)으로 두고 공격한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즉 외모로써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낀 딸의 외모를 맹렬히 공격했다고 가정한다면 Kate가 45 kg을 감량하고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머니를 찾아왔을 때, 외모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라푼젤이 마법의 머리카락을 잘라냈을 때 고델에게 라푼젤이 아무 쓸모가 없어졌듯이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운 Kate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외모적 우월감을 확인시켜 줄-이용가치가 없는 무시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Kate는 체중을 감량한 후, 라푼젤은 머리카락을 잘라낸 후 그들을 구속했던 어머니들의 과도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물론 체중 감량이 가능했던 것은 Kate의 내적 구조가 변화하고 인생의 선택권이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라푼젤이 우연한 기회에 탑을 탈출한 것은 새로운 대상 플린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또 고델로부터 분리와 개별화를 할 수 있는 계기는 플린이 라푼젤을 머리카락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은 플린이다). Kate도 자신을 이용가치가 아닌 존재가치로 인정해주는 새로운 대상-즉 치료자-를 만나면서 집을 정리하고 몸을 돌보는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Kate의 교훈적 우화(Cautionary tale)

첫 만남에서 Kate는 몸과 가족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밝힌다. 이를 통해 Kate가 이 치료를 시작하기 두려워한 이유, 즉 Kate 내면의 교훈적 우화-무의식으로부터의 경고-가 드러난다. 교훈적 우화는 환자가 왜 치료를 위험하다고 느끼고, 왜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하는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설명이며 일종의 전이 불안(transference anxiety)이다(Ogden 1989).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형성된 Kate의 내적 대상관계는 치료자와의 관계가 어머니와의 관계처럼 자신의 (몸의) 경계를 침범하는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의 Kate는 이 치료에서 경험하게 될 관계가 이전의 관계들과 다를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아직 없었다. 몸과 가족을 다루고 싶지 않다는 말은 “보지 마세요”와 “어떻게 날 보지 않을 수 있어요”라는 두 가지 모순된 메시지를 전하는 Kate의 몸처럼 모순된 두 가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몸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와 “몸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너무 두려워요. 선생님도 저도 파괴될 것 같아요”라는 전이 불안이다.

Kate의 전이 불안, 즉 교훈적 우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는 ‘강렬한 감정은 언제나 파괴적이다’이다. Kate가 왜 끔찍한 정신적 고문을 견디면서까지 말을 하지 않았는지, 그녀를 침묵하게 만든 공포의 크기와 종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녀의 내적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Kate의 전이 불안이 발생한 배경이 되는 내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은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197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캐리(Carrie)’이다. Carrie는 수줍음이 많고 친구가 없는 이방인으로 광신도인 어머니에게 강압적인 양육을 받으며 자랐다. Carrie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세상에 나가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것이 죄악이며 배신이라고 가르친다. Carrie는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에서 동기들의 짓궂은 장난에 크게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는 봉인되었던 초능력을 해제시켜 마을 전체를 파괴한다. 영화에서 Carrie는 염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괴롭힌 사람은 물론 자신을 도운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공포와 억압의 원천이자 사랑의 대상인 어머니도 죽인다. 이것은 Kate가 두려워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어머니, 가족 그리고 치료자를 보호하기 위해 Kate는 매우 어둡고 무서운 비밀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발설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기에 어떠한 것도 말할 수 없었다. Kate는 상징화의 능력이 부족하여 내적 감정을 목소리에 투사하여 외부에서 위협이 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목소리와 초능력은 사실 Kate 무의식 속의 해결되지 않은 강렬한 분노이다. 이것을 Bion(1962)의 개념을 빌려 이해해 본다면 Kate 내면의 분노와 압도되는 혼란은 베타 요소(beta element)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잘 처리되지 못한 베타 요소가 폭식이라는 행동화와 해리라는 정신신체화 증상으로 발생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이 수용된 경험이 거의 없는 Kate는 베타 요소를 알파 요소로 변환시키는 알파 기능(alpha function)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분노감정과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 셧다운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쓰게 되었다. 즉 극단적인 분열을 통해 분노에 압도되는 혼란 상태하의 Kate와 분노를 봉인한 가학적 통제하의 Kate를 엄격하게 분열시킨 것이다.

죄와 벌

Kate의 몸은 죄의 구체적인 증거이자 폭식과 불편함이라는 처벌을 받는 대상이었다. 처벌을 통해 또다시 죄를 짓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를 통해 Kate는 고문과 처벌에 머물게 되었고 무의식적으로는 ‘처벌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죄와 벌은 Kate의 치료의 시기에 따라 그리고 정신 구조의 여러 층에서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이를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Figure 2).

Kate는 자신이 어머니를 만족시키지 못한 나쁜 딸이자 자신의 몸을 비만으로 방치한 나쁜 사람이라는 ‘죄’를 지었다고 자책하였다. 이 ‘죄’에 대한 ‘처벌’로 그녀는 더러운 집과 생명을 위협받는 몸 그리고 정신적 고문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처벌’은 그녀가 피할수 없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료를 진행하면서 이 ‘처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죄책감에 압도된 자신이 살 권리를 확보하고, 내면의 분노를 회피할 수 있는 해리를 제공하며, 어머니와 이별을 회피하도록 자신을 세상에서 격리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결국 Kate는 해리 시 목소리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회복하게 된다.

또 다른 소통 방식

치료자는 말이 금지된 상태에서 또 다른 소통 방식으로 예술작품과 글을 시도했다. 저자는 이 외에도 치료자가 Kate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을 수용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치료자의 공상이 Kate가 해리 시 경험하는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치료자는 침묵하는 Kate에게 집중(engage)하고 공감적으로 환자의 정서에 조율(empathic attunement)하면서 치료자 자신의 신체가 제한받는 느낌을 포착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나치 군인이 Kate의 머리를 배트로 때리고 고함치는 이 생생한 이미지와 자동차를 멈추는 고정장치가 치료자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공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마치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의 불편한 생각(unthinkable thought)과 견딜 수 없는 감정(unbearable feeling)을 엄마가 수용하고 함께 꿈꾸며-즉 담아 주고-아기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돌려주는 것처럼, 치료자는 Kate의 표현할 수 없는 내적 불편감을 생생하게 함께 담아 주고 처리한 후 돌려주었고 이것이 Kate가 언어를 되찾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변환적 사고(Transformative thinking)

Kate가 보여준 놀라운 내적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개념은 변환적 사고이다. Ogden(2016)은 사고 과정을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 꿈꾸기 사고(dream thinking), 변환적 사고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각각의 사고는 단독으로 한 번에 한 개씩 작동하기보다는 동시에 세 가지가 정도를 달리하며 항상 공존한다. 첫 번째, 마법적 사고는 불편한 외부 현실을 만들어낸 내부 현실로 대치하는 사고이다. 이것은 진정한 정신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여기에는 전능 환상이 작용하고 무의식적 내적 대상관계 구조가 보존되기 때문에 현실의 진짜 외적 대상과의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다. 이는 Kate가 자신을 해리라는 정신적 감옥 그리고 혼란스러운 집이라는 현실의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는 상황이라 볼 수 있겠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지 못한 자신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이 자기애적인 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전능 환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꿈꾸기 사고로 가장 깊은 형태의 사고이며. 동시에 여러 사고 과정이 일어나는 매우 창조적인 형태의 사고이다. 이때 일어나는 다양한 사고 과정으로는 일차 과정 사고 그리고 이차 과정 사고, 수용하는 역할이면서 동시에 수용받는 상태가 되고, 편집분열적 위치(paranoid-schizoid)이면서 우울 위치(depressive position)이고 자폐에 근접한 위치(autistic-contiguous position)이다. 또 마술적 사고이면서 동시에 현실적 사고이며, 유아기적이면서도 성숙한 자기의 사고이기도 하다(Ogden 2016). 이처럼 꿈꾸기 사고에서는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아우르는 풍부하고 비선형적인 무의식적 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마술적 사고와 다른 점은 정신 구조의 변화, 즉 진정한 심리적 성장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혼자서도 꿈꾸기 사고를 할 수 있지만, 가장 불편한 정서 과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둘 이상이 이 과정을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변환적 사고다. 이것은 일종의 꿈꾸기 사고로, 매우 극적인 정신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를 통해 환자는 이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상관계, 삶에 대한 생동감을 얻게 된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최소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필요한데, 고립된 사람은 경험의 중요한 의미의 카테고리를 극적으로 혼자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분석가들이 이러한 변환을 자신만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프로이트는 변환을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가 후기에는 이드에서 자아로 정신적 구조가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Klein(1948, 1952)은 이 현상을 편집-분열 위치에서 우울 위치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Bion(1962)은 이것을 불편하고 정신화되지 못한 정서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정신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고하거나 꿈꾸는 시도를 하는 정신으로의 변화라고 했다. Winnicott(1971)는 변환을 판타지화시키는 것에서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중간 공간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 수 있는 능력으로의 이동이라 하였다.

Kate는 치료를 통해 고통 속에 머무는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몸과 집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또 분리가 반드시 어머니를 배신하는 행위가 아니며, 자신이 살 권리를 되찾는 것이 어머니의 삶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의 변화도 있었다. 또 자신의 나쁜 점은 언제나 비난하고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좋은 점과 함께 나의 일부이며 그럼에도 자신이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도 매우 극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이것은 Kate의 정신 내적 구조가 변화되는 변환적 사고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결론

정신신체화 환자의 치료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증례 ‘금지된 언어와 침묵을 넘어서’를 통해 정서 경험을 상징화하는 경로가 차단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지 고찰해보았다.

어린 시절 감정을 적절히 수용받지 못했을 때, 정신화 기능이 발달하지 못하고, 압도되는 정서 경험을 처리하기 위해 언어의 영역을 우회하여 신체로 정서를 방출하는 샛길이 생기게 된다. 이를 통해 정신신체화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이것을 말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증례에서 치료자는 자신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정신신체화 환자들과 치료 초기에 말을 대신할 소통 수단을 찾아야 하고, 그들의 몸의 언어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Wirth가 자신의 이 길고 힘들었던 여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며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 다른 치료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Sloate 2016).

“우리는 결국 그녀의 공포를 공유하고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묘사할 언어를 찾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갔다. 하지만 이 소통은 상징적 언어가 가능해지고 Kate가 해석적 작업에 마음을 열기 전까지 매우 긴 시간과 인내 그리고 독창성을 요구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 가고, 신뢰를 쌓아가고, 감정과 언어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전통적 분석가로 수련받은 나는 때때로 이것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 증례가 비슷한 도전과 어려움을 경험하는 다른 치료자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희망한다.”

본 저자는 이에 덧붙여 말을 상실한 Kate가 말하는 치료를 통해 내적 세계에 큰 변화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를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치료자의 역전이가 단순히 Kate의 내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치료자가 Kate와 함께한 꿈꾸기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Kate를 압도하는 감정과 생각을 치료자가 공상으로 경험하면서 말로 표현해주고 수용을 통해 처리해주면서 무의식과 대상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변환적 사고가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Kate는 치명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왔던 감정이 수용되는 것 그리고 치료자가 이 과정에서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경험하면서 변환적 사고를 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무의식적 공포를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증례를 통해 신체화 환자를 치료할 때는 언어 외의 소통과 치료자의 역전이와 공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환자와의 매 순간을 처음 발견하는 것처럼 경이롭고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석적 시각과 공감적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것이 침묵을 건너는 꿈꾸기 사고와 환자의 내적 구조가 진정으로 변하는 변환적 사고가 촉진되는 좋은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Conflicts of Interest

The authors have no financial conflicts of interest.

Figures
Fig. 1.

Shunt formation in psychosomatic patients.


Fig. 2.

Psychodynamic formulation regarding “sin and punishment”.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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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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