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자: Mark Solms |
출판사: W.W. Norton & Company, Inc. |
출간연도: 2021 |
ISBN: 9780393542011 |
정신분석가이자 신경심리학자이며 IPA의 전 Research Chair였던 마크 솜즈(Mark Solms)는 몇 년 전 의식에 관한 신경과학적 시각의 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2021년 ‘The Hidden Spring, a Journey to the Source of Consciousness’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숨겨진 샘이라는 책의 제목은 해부학적으로는 수도관 주위 회색질(periaqueductal gray, PAG)을 지칭하는 듯하며, 심리학적으로는 의식이 샘솟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한 듯 보인다. 저자가 의식을 대하는 기본적인 입장인 이중양상 일원론적 시각을 잘 반영하는 제목인 것 같다.
“우리가 초심리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온갖 논의가 똑 부러지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정신 체계의 구성 요소들 내에서 일어나는 흥분 과정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그 주제에 대해 어떤 가설을 만들어 낸다 할지라도 완전히 옳다고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미 정신적인 용어를 생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용어로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면 우리가 설명한 것의 결점들은 아마도 사라졌을 것이다… 진실로 생물학은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다. 아마 생물학은 우리에게 가장 놀라운 정보를 줄 것인데,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수십 년 뒤 어떤 대답을 내어놓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 대답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든 가설적 구조 전체를 날려 버리는 종류일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본디 신경과학자였다. 하지만 1895년에서 1900년 사이의 어느 시점부터 그는 인간 정신에 관한 ‘물리’적인 탐구를 완전히 포기하였으며, 이후로는 순수한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마음의 역동을 살피고 초심리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과업에 일생을 바쳤다. 이유인 즉 당시의 과학 수준에서 정신생활을 신체적/기질적/물리적 관점으로 풀어내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신경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남기고 떠난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신경정신분석이란 용어를 세상에 처음 가져온 인물이자, 지금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인 마크 솜즈는 신경과학과 정신분석적 초심리학에 연결 다리를 놓음으로써, 프로이트가 미완으로 남겨둔 스케치에 색깔을 더하려는 야심 찬 구상을 마음에 품었다.
초창기 그는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Aleksandr Romanovich Luria)의 방법론인 ‘역동적 위치 특정법’을 차용했다. 역사적으로 루리아는 이른 시기 러시아의 정신분석 운동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정신분석에서 멀어지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본질을 관통하는 원칙들을 세우려는 입장을 말년까지도 고수했기에, 솜즈 박사는 루리아의 방법론이 정신분석과 양립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마크 솜즈는 다양한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정신분석적으로 보았고(혹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시행하였고), 각각의 사례에서 두드러진 심리적 변화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변화들을 공히 초래하게 만든 핵심적 역동을 정신역동적인 시각에서 찾아낸 다음 해부학적 부위와 연결시켜 정리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Clinical Studies in Neuro-Psychoanlysis (신경정신분석으로의 초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루리아 다음으로 신경정신분석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정동신경과학자 자크 판크세프(Jaak Panksepp)였다. 찰스 브레너(Charles Brenner)의 딸인 루시 비븐(Lucy Biven)과 함께 쓴 책 ‘마음의 고고학(The Archaeology of Mind)’에서 판크세프는 SEEKING, RAGE, FEAR, LUST, CARE, PANIC/GRIEF, PLAY라는 일곱 가지의 신경해부학적 정동 체계를 상술하였다. 이런 체계들은 모두 해부학적으로 PAG로 수렴하며, 항상성 유지의 측면 및 기타 여러 맥락적 측면을 토대로 시시각각 선택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개체는 동기 부여된 행동을 하게 된다. 마크 솜즈는 위와 같은 정동 신경해부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신경정신분석에 있어 핵심이 되는 주장들을 펼치게 된다. 첫 번째는 욕동(drive)과 정동(affect)에 관한 주장이다. ‘신체와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일을 수행하게끔 마음에 가해지는 요구의 척도라고 프로이트가 정의내린 욕동’의 의식화된 신호가 ‘정동’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드(Id)가 의식적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주장은 좀 더 나아가는데, 의식의 신경과학적 가설 중에서도 독특한 입장을 띄는, ‘정동이 곧 기초적인 의식’이라는 주장이다. 카테고리적으로 각기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되어 있는 신경해부학적 정동 체계들 가운데에서 선택받은 체계만이 뇌간의 상행 망상 체계에 의해 활성화되며, 이렇게 선택받은 정동만이 의식화된다는 것이다. PAG에서 선택받지 못했기에 상행 망상 체계에 의해 활성화되지 못한 정보들은 (역동적으로) 무의식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이는 흡사 프로이트가 일찌감치 과학적 프로젝트에서 억압의 기전을 설명하고자 했던 side-cathexis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크 솜즈와 신경정신분석에게 세 번째 돌파구를 열어준 인물은 정신과 의사이자 계산 신경과학자인 칼 프리스턴(Karl Friston)이다. 칼 프리스턴의 지적 창조물인 자유에너지 원칙(Free Energy Principle)a은 굉장히 난해한 이론으로 악명이 높다. 보다 온전한 설명을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겠지만, 이 지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만 말로 풀어 써보려고 한다.
‘신체, 즉 물질적인 것’과 ‘정신, 즉 비물질적인 것’을 아우르는 가교 역할을 할 만한 적당한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현존하는 의식의 신경과학적 가설들 가운데 유명한 두 가지 가설[즉 통합 정보 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과 예측적 프로세싱 이론(Predictive Processing)b]에서는 그 역할을 ‘정보’에 맡기고 있다. 정보야 말로 물리적 상태와 함께 깃들 수 있는 비물리적 상태인 것이다.
정보이론의 아버지인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은 정보량을 확률로서 표시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보량을 확률로 나타내는 방정식은 엔트로피에 관한 볼츠만(Boltzmann) 방정식과 수식적 골격이 동일하다. 슈뢰딩거(Schroedinger)는 일찍이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음의 엔트로피’ 라고 답한 바 있다. 즉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항해, 스스로의 내부 상태를 한정된 범위 내에 머물게 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알다시피 열역학 제 2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이다. 엔트로피는 정의상 ‘거시적으로 동일한 상태에 해당하는 미시적인 상태의 수’에 관한 물리량이다). 이는 결국 항상성(homeostasis)에 대한 언급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인데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프로이트가 묘사한 생의 본능/죽음의 본능을 떠올리게도 한다.
“에로스의 목표는 보다 더 큰 통합체들을 이뤄내고 보존해내는 것으로서, 짧게 표현하자면 함께 묶는 것(bind together)이라 하겠다. 반면 타나토스의 목표는 연결을 다시 끊고 존재들을 부수는 것이다.”
생명체는 살아가기 위해 내부의 엔트로피를 낮게 유지해야 하며, 되도록이면 이미 주어진 세팅 값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이를테면 우리 체온은 섭씨 36.5-37.5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 세팅 값은 종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한편 엔트로피를 뇌에 국한해서 살펴보자면 좀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한 개체의 두뇌 내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외부 현실을 예측하는 일종의 근사치인 내적 모델이 만들어질 것인데, 점차 이러한 내적 모델이 자리를 잡고 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력신호들은 가급적 기존 모델의 예측 값을 벗어나지 않는 편이 선호될 것이다(물론 베이즈 법칙에 따라 내적 모델들은 수정될 수 있다).
감각 수용기에서 출발해 뇌의 중심부로 향하는 입력 신호들은 위계적 단계를 거치며 상행 진행하는데(즉 구체적인 정보에서부터 점차 추상적인 정보에 상응하는 단계로 진행하는데), 매 단계마다 내적 예측 모델과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이때 ‘미리 예측한 정보의 양’과 ‘입력되어 들어온 정보의 양’의 차이를 ‘놀람(surprisal)’이라고 하며,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라고 정의한다. 한 개체의 입장에서는 예측 모델과 입력신호 사이의 교집합인 상호 정보(mutual information)가 최대화되어서 둘 사이 정보 흐름이 최소화되는 경우, 다시 말해 놀람이최소화되는 경우가 유리하다. 예측 오류가 최소화되어 정보 흐름이 최소화될 경우 대사 소모가 줄어 결국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만일 예측 모델과 입력 신호 사이에 불일치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발생한 엔트로피는 unbound energy로서, 위계상 다음 단계로 전파된다. 불일치가 유의미하게 큰 입력 신호일 경우 점점 더 상위 위계로 올라가는데, 마지막 단계까지 전파될 경우 뇌의 가장 안쪽 층위(innermost layer)인 PAG까지 도달한다. 여러 가지 카테고리의 예측 오류 신호들이 동시에 PAG에 수렴할 수 있는데, 이때 PAG는 맥락에 맞게끔 우선되는 예측 오류를 선택해 내고 이는 다시 상행 망상 체계를 통해 의식화된다. 이를 통해 예측 오류를 최소화시키려는 동기가 부여된 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피드백 루프가 완성된다.
프로이트는 unbound energy를 가리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리적 질병 증상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는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칙에서 상대 엔트로피를 바라보는 입장과 유사하다. 결국 개체는 자유에너지, unbound energy 혹은 예측 오류를 줄여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3가지 전략을 쓸 수가 있다. 1) 들어오는 입력 신호를 변화시켜 기존 예측 모델에 맞게끔 만드는 것, 2) 입력 신호에 어울리게끔 세상을 바라보는 내적 예측 모델을 바꾸는 것, 그리고 3) 의식적 가중치를 조정하여 들어오는 예측 오류의 역치를최적화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투사적 동일시가 1)의 기전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르며, 2), 3)의 기전이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에서 행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간략히 언급한 내용 가운데 루리아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책 ‘The Hidden Spring’에 상술되어 있다. 한국어 번역 판권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어, 조만간 국내에 번역본으로도 소개될 것이라 기대한다. 좀 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에 적용된 자유에너지 원칙적 설명을 확인하려면 Jeremy Holmes의 책 ‘The brain has a Mind of its Own: Attachment, Neurobiology, and the New Science of Psychotherapy’도 추천하고 싶다.
프로이트는 빈 의과대학 시절 에른스트 브뤼케(Ernst Brucke)의 제자였고, 브뤼케는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의 제자였다. 헬름홀츠는 기본적으로 두뇌를 위계적 추론 기계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이른 바 현실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극장에서부터 투사된 가상현실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늘날 아닐 세스(Anil Seth)와 같은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의식을 가리켜 ‘제어된 환각’이라 말하고 있다. 아무튼 열역학과 에너지 보존에 대해 탐구했던 헬름홀츠가 빈 의과대학을 이끌었던 인물인 점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다. 빈 학파에서 출발한 프로이트의 과학적 자세에는 애초부터 분명 이러한 토양이 스며 있었을 터이다. 오늘날 마음과 두뇌를 바라보는 학문이 결국 한 지점으로 수렴해 가고 있는 것은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a Principle은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현실 원칙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보아 원리가 아닌 원칙으로 번역했다.
b 예측적 프로세싱은 엄밀히 말해 의식/무의식을 모두 아우르는 가설로 의식에만 국한된 신경과학적 가설은 아니다.